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에서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많은 석유 가스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으로 미국의 심해 평가 전문기관인 액트지오(Act-Geo)사에 심층 분석을 맡겼다고 한다. 이를 통해 최근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가스가 있다는 잠정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1990년대 후반에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알고 보면 20년 전에 95번째 산유국이 됐다. 2004년 동해 천해(6-1광구 중부·남부)에서 상업 가스를 생산하면서부터였다. 다만 매장량은 4500만 배럴로 많지 않고, 그나마 2021년 가스 고갈로 문을 닫기도 했다. ‘무늬만 산유국’인 형국이다. 기존의 300배 넘는 석유·가스 매장량이 실제 확인된다면 얘기는 180도로 달라진다. 명실상부한 산유국 대열에 서게 된다.
석유·가스를 합쳐 140억 배럴 규모라면 실질 가치도 절대 적지 않다. 미국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가채 석유 매장량 순위 15위는 카타르로 252억 배럴로 추산된다. 16위는 약 130억 배럴의 브라질이다. 영일만 일대 해저에서 최대 매장량이 확인된다면 우리나라 산유국 순위는 자원 부국인 브라질보다도 앞서게 된다. 세계가 다 아는 자원 빈국이 돈방석 대신 에너지 방석 위에 앉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 에너지 97∼98%를 수입에 의존한다. 국내 경제 전반이 중동 정세에 휘둘릴 만큼 외풍에 민감하다. 영일만 석유·가스 개발이 구체화하면 설혹 경천동지할 규모가 못 된다 해도 국가 경제 전반에 걸쳐 엄청난 변화를 부를 동력이 되게 마련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소용돌이를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전략적 이점부터 막대하다. 지경학적인 보너스라고 할 수 있다. 기업과 산업 경쟁력도 대폭 강화된다. 새로 얻는 탄소에너지와 원전 등 기존 강점을 잘 버무리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값싼 에너지 가격은 덤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상업적 성공 여부가 관건이다. 포항 지역 석유 부존 가능성은 1960년대부터 제기돼 왔다. 2004년 가스 생산에 앞서 1976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한 적도 있다. 하지만 다 용두사미로 끝났다. 이번에도 그리되면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격이 된다. 혹여 불신의 벽이 쌓이지 않도록 섬세히 실행하고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영일만 석유·가스전은 한국의 독자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포함된 ‘우리 것’이다. 다만 넓은 범위의 해역에 걸쳐 있고, 깊이가 1㎞ 이상인 심해 가스전이다. 고난도 작업을 피할 수 없다. 미국 전문기관에 심층 분석을 맡겼듯이 앞으로도 해외 전문기업 노하우와 기술력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내 기업도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다. 해외 유전 개발 경험과 능력이 있다면 이번에 안방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