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계획 ‘더 라인’, 2.4㎞ 그칠 전망
무리한 사업 진행 속 주민 반발 거세져
공사비 치솟는데 유가 약세에 타격
중동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위기설에 휩싸이면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곤경에 빠졌다.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리는 사우디 왕정의 실세 빈 실만 왕세자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미래형 신도시 ‘네옴시티’의 규모가 당초 계획보다 대폭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그의 탈(脫) 석유화 청사진 ‘비전2030’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네옴시티는 빈 살만 왕세자가 2017년 발표한 대형 프로젝트다. 그중 주거지구인 ‘더 라인(The line)’은 홍해에서 시작해서 동쪽으로 170㎞를 잇는 구조로 미래형 도시 네옴시티의 핵심 건축물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443m)보다 더 높은 500m 초고층 건물이 200m의 간격으로 양쪽에서 170㎞ 직선으로 이어지는 형태로, 지하 고속철과 에어택시를 통해 넓은 내부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콘셉트다.
2022년 7월 더 라인의 세부 계획안이 공개된 직후 실현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지만, 글로벌 기업 수십 곳은 물론 국내 기업 다수가 네옴시티 건설에 참여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더 라인에 최첨단 기술을 집약해 1단계로 2030년까지 150만 명을 2045년에는 90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사실상 인구 700만 명인 수도 리야드를 능가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난 4월 1단계 목표 인구가 30만 명으로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외신 보도들이 잇따랐다. 사우디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개발 속도라면 2030년까지 완공되는 구간이 전체 170km 중 2.4km 정도에 그칠 것으로 추산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우디 내부에서는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민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영국 BBC는 지난달 초 소식통을 인용해 네옴시티 건설부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퇴거 명령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 1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대부분은 수 세대에 걸쳐 해당 지역에 거주한 부족민들이다.
영국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 ALQST와 유엔에 따르면 최소 47명이 퇴거 명령에 반발했다가 구금됐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테러 관련 혐의로 기소됐다. 특히 수감자 중 5명은 사형수로 수감됐다고 ALQST는 전했다.
사우디 정부는 네옴 프로젝트를 위해 이주한 주민이 6000여 명이며, 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ALQST는 이주 대상 주민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고, 정부 보상액은 당초 약속했던 것보다 훨씬 적게 지급됐다고 주장했다.
네옴 프로젝트에 합류한 지 1년 만에 손을 뗀 영국 담수화회사 솔라워터PLC의 말콤 어(Malcolm Aw) 최고경영자(CEO)는 “그 지역에 사는 최첨단 기술을 접하기 쉬운 일부 부유층은 좋을 수 있지만, 나머지 주민은 어떻겠나” 반문하며 “원주민들을 없애려는 것 대신에 개선하고 재창조하기 위한 조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국제유가가 사우디의 기대보다 낮게 유지되고 있어서 오일머니로 ‘탈석유 경제’를 구축하겠다는 빈 살만 왕세자의 전략이 막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 4월 국제통화기금(IMF) 추정에 따르면 원유 가격이 올해 최소한 배럴당 96.2달러가 돼야 사우디가 재정적자를 면하고 균형을 이룰 수 있다. 현재 국제유가는 브렌트유 기준으로 배럴당 80달러 안팎에서 움직인다.
여기에 국제유가를 방어하려고 2022년 말부터 원유 감산을 해온 것도 아직은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사우디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사우디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1.8% 줄어 3개 분기 연속 위축세를 기록했다. 석유 부문이 10% 넘게 감소했고 비석유 부문 GDP도 2.8% 증가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더 라인을 비롯해 네옴시티 전체 예상 공사비는 당초 5000억 달러에서 1조2000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이에 사우디 정부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주가 약세에도 이 회사 지분 매각에 나서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