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어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 1위가 아니다”라는 골자의 설명자료를 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34개국 중 가장 높았다는 국제금융협회(IIF) 통계를 인용한 최근 보도들에 대한 반박 자료였다. 금융위는 지난해 4분기 기준 가계부채 비율 통계들을 취합하면 한국 앞에 스위스, 호주, 캐나다가 있다고 주장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한국보다 심각한 나라는 따로 있고, 그것도 여럿이란 것이다.
이례적인 설명자료가 나온 것은 최근 국민계정 통계 기준 연도 개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1위 수준”이란 분석 기사가 쏟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통계 기준이 2020년으로 바뀐 데 힘입어 지난해 말 가계부채 비율은 기존 100.4%에서 93.5%로 6.9%포인트(p) 낮아졌다. 새 기준에 따르면 우리 가계부채는 100%를 넘은 적도 없게 됐다. 개편 전의 종전 최고치는 2021년 말의 105.4%였으니 마술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가계부채 1위라는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당국으로선 땅을 칠 노릇이다.
세계 순위만이 문제가 아니다. 가계부채를 GDP 100% 이하로 관리할 수 있느냐 여부가 큰 관심사가 돼 왔다는 점도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100% 미만으로 낮추는 것이 저의 책임”이라고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유사한 국회 발언을 했다. 그렇게 강조되던 ‘100% 이하 관리’ 목표가 일거에 달성된 셈이니 성과라면 성과다. 하지만 이 또한 ‘세계 1위’ 보도 홍수에 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금융위가 반박에 나선 것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부채 리스크가 실질적으로 완화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공감은 어렵다. 통계가 바뀌었다 해도 빚더미에 앉은 국가 처지는 바뀐 게 없지 않나. 경제 성장률보다 부채 증가 속도가 빠른 상황도 유념할 일이다. 가계·기업 부채 증가율은 세계 최악이다. 연체율 지표도 좋지 않다. 금감원 집계 결과 올해 1분기 말 국내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54%로 2012년 12월(0.64%)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2383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3분기 기준 44.4%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처지였다.
현실이 이렇다면 당국이 최우선으로 공들일 것은 정책 홍보가 아니라 부채 다이어트다. 부동산 경착륙 예방을 위한 정책금융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이 4, 5월 두 달 연속 5조 원 가까이 늘어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량은 근래 꾸준히 증가 중이다. 전셋값, 집값이 심상치 않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민간 부문의 악성 부채를 털어내려면 부채 감량을 단호히 실행하는 정공법으로 임해야 한다. 회생 가능성 없는 PF사업, 좀비기업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야 한다. 국회는 주요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정부 부채가 또 다른 눈덩이가 되지 않도록 재정준칙 관련법을 조속히 처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