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넓어졌지만 삶의 질 비례안해
상대가 인정할 때 진정한 소통이뤄
언제 어디서나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소통이 가능해진 시대, 오히려 소통 부재와 소통 불능이 뜨거운 화두로 부상하고 있음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청소년 연구자를 만난 자리에서 소통의 역설을 떠올리는 웃픈(?) 이야길 들었다.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 여러 곳을 방문해서 5학년 교실에 들어갔단다. “휴대전화 가진 친구들 손 들어보세요.” 그랬더니 예상했던 대로 대부분의 손이 올라갔다고 한다. 사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고(高)학년부터는 휴대전화가 필수템임을 재차 확인한 셈이다.
다음 질문으로 엄마 아빠 이름을 무어라 입력했는지 물었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아빠 이름은 없는데요”라는 답이 들려왔단다. 아빠들이 들으면 서운해할 것 같다고 생각하던 순간, 5학년짜리 휴대전화에 입력된 엄마 이름을 듣고는 빵 터졌다고 했다. 물론 ‘엄마’라고 입력한 친구들이 제일 많았고, 엄마의 예쁜 이름을 적어 넣었다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이 다수 등장했다고 한다.
엄마의 별칭으론 잔소리꾼이 1위, 뒤를 이어 중전마마가 2위를 차지했는데, 연구자의 인상에 가장 오래 남았던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은 ‘안받아’였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함께 들었던 중학교 교사는 “아마도 중학생 되면 엄마 아빠 이름에 욕이 등장할 것”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며칠 지나자 이번엔 아빠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야기 속 주인공 아빠는 대기업 직원이었는데, 중학교 1학년 아들에게 휴대폰 속 아빠 이름이 무언지 물었단다. 직접 확인하라며 건네준 휴대폰 속에서 발견한 자신의 이름은 ‘진상’ 두 글자였다며, 허탈하게 웃던 아빠 얼굴이 떠오른다.
물론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 아빠도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중2 아들 녀석이 자신의 휴대전화에 아빠 이름 세 글자를 적어 넣었는데, 그 이름이 ‘내지붕’이었다는 게다. “저는 성공한 인생이지요?” 묻는 아빠의 얼굴에 번지던 미소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 아빠를 향해, ‘나는 좋은 아버지다’에 동의할수록 인생의 만족도도 높고 업무 성과도 좋으며 자신감 수준도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는 연구 결과를 들려주었다.
휴대전화의 등장을 알리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소통이 가능해진 시대가 열렸음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소통의 양이 폭증한 만큼 소통의 질도 함께 깊어지고 풍성해졌는지는 정말 의문이다. 물론 스마트폰 동영상 기능 덕분에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적 가족의 유대가 공고해졌다는 연구 결과는 굿 뉴스다. 그뿐이랴, 은행 업무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고, 길 찾기도 한결 수월해졌는가 하면, 맛집 밀키트 주문 서비스를 통해 끼니 해결도 용이해졌다. 버스 기다리는 시간도 대폭 줄었으니 참으로 많은 것이 편리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소통의 만족도 및 삶의 충만함이 함께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지는 물음표다. 부모 자녀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건만, 얼굴 맞대고 이야기꽃을 피우기보다는, 저마다 휴대폰에 코를 박고선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일상을 팔로하거나, 미처 못 본 드라마 짤영상을 보거나, 밀린 웹툰을 넘기거나, 게임 삼매경에 빠져들곤 하지 않던가. 지나친 확대 해석은 금물이지만, ‘안받아’ 엄마와 ‘진상’ 아빠가 자녀의 휴대폰에 등장하는 현실이야말로, 부모 자녀 간 감정의 밀도는 높아졌건만 진정한 소통은 부재한 우리네 가족의 슬픈 민낯 아니던가.
소통 전문가들에 따르면, 소통이란 ‘어떻게’ 보다 ‘무엇을’이 더 중요하건만 기본 중 기본을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나아가 소통의 생명은 진정성에 있음을, 이 진정성은 일회적 이벤트보다 지속적 루틴으로 자리잡을 때 확보될 수 있음을, 덧붙여 본인 입으로 진정성을 주장하기보다는, 상대가 인정해줄 때 비로소 진정성 있는 소통이 이루어짐을 기억하라는 것이 소통 전문가들 조언이다. 하기야 일상 속에서도 힘겨웠던 소통이 국회에 입성하는 순간 저절로 물 흐르듯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새삼 국회의원 자녀들은 엄마 아빠 이름을 무어라 저장해 놓았는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