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영 보호막도 없이 ‘알토란’ 기업 떠밀면 안 돼

입력 2024-06-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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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자본의 융단폭격 위험이 커지는 국면에 우리 정치권이 기업생태계를 보호하기는커녕 경영권을 흔드는 역주행을 일삼는 것으로 지적됐다. 어제 본지 취재진이 22대 국회 법안 발의 현황을 파악한 결과 이달 발의된 상법 개정안만 총 9개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개 ‘반시장·반기업’ 기류에 편승한 날림 법안이다. 황금알 낳는 거위를 잡아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격이다.

상법 발의안 중 이사의 충실의무 관련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사가 회사를 위해 그 의무를 충실하게 행사해야 한다고 규정한 부분에 주주를 추가하는 내용이다. 여러 변형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준호 의원안은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같은 당 박주민 의원안은 ‘총주주’를 각각 추가했다. 소수주주 동의제, 다중대표소송제를 추진하는 입법 시도도 있다. ‘개미’를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포퓰리즘 병폐가 짙으니 탈이다.

충실의무 대상 확대안을 보자. 수많은 주주가 다 이익 극대화를 바란다 쳐도, 단기 관점이냐 중장기 관점이냐 등의 잣대에 따라 이해관계는 엇갈리게 마련이다. 모든 주주를 만족시킬 결정이 어찌 가능하겠나. 대상 확대는 경영 부담을 무한대로 늘릴 뿐이다. ‘비례적 이익’도 공감하기 어렵다. 소액 주주 이익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겠지만, 기본적으로 모호하고 법학자들에게도 생소하다. 결국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는 입법은 피해야 마땅하다.

경영권이 흔들리는 기업은 안보가 불안한 국가와 다를 바 없다. 우리 정치권이 민생을 챙기고자 한다면 서두를 것은 기업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아니다. 경영권 안정을 위한 보호막 구축을 우선해야 한다. 기업생태계는 녹록지 않다. 지난해 행동주의 펀드 공격을 받은 국내 기업은 77개사로 2019년 8개에 비해 9.6배로 증가했다. 조사 대상 23개국 중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따로 없다.

삼성물산은 지난봄 5개 펀드 공격을 받았다. 국내외 펀드는 5000억 원 상당의 자사주 매입과 고배당을 요구했다. 삼성물산은 방어에 성공했지만 여러 펀드가 늑대 떼처럼 먹잇감을 공략하는 ‘울프 팩(늑대 무리)’ 전략은 갈수록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배전의 경각심이 필요하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프랑스 등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맞서는 포이즌필을 비롯, 차등의결권과 황금주 등 ‘3종 세트’를 갖추고 있다. 군비경쟁 이치는 전쟁, 생물학, 시장경제 등에 두루 적용된다. 국내외 투기자본이 국내 알짜 기업들에 눈독을 들이고 날카로운 창과 칼을 휘두른다면 해당 기업들도 방패와 갑옷을 갖춰야 치명상을 피할 수 있다. 과연 현실은 어떤가.

정치권이 역주행을 하는 이유는 뻔하다. 반시장 정서의 곁불을 쬐겠다고 저 난리들이다. 하지만 국부와 일자리 원천인 기업들을 벼랑으로 떠밀어서는 안 된다. 만약 정확한 길을 모른다면, 한국경제인협회 전신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21년 제안했던 ‘전경련 모범회사법’을 참고할 일이다. 포이즌필 등이 왜 필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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