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입법 폭주 가능성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39개 주요 금융회사 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하반기 전망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8명(어렵다 66.7%, 매우 어렵다 10.3%)이 “경영 환경이 어렵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시장 상황이 아닌 외생변수에 의한 어려움이 가장 클 것으로 봤다.
압박감 주는 대상을 묻는 문항에 대한 답은 ‘22대 국회’(59.0%)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 본지의 비슷한 설문조사에서 1위였던 ‘현 정부 정책’(35.9%)을 앞질렀다. 가장 우려되는 법안으론 ‘횡재세’로 통하는 ‘초과이윤세’(48.7%)가 지목됐다. 은행 영업비밀인 대출 원가를 공개하는 ‘가산금리 산정 합리화’(30.8%)가 뒤를 이었다.
금융은 대표적인 면허 산업이다. 우리 금융계는 과거 압축 성장기를 거치면서 정부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컸다는 특성도 있다. 국내 금융계는 구조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정부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치’를 가장 우려한 지난해 조사 결과도 이를 반영한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CEO들은 되레 국회 행보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22대 국회 지형상 금융 생태계를 초토화할 수 있는 입법 규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인식과 우려를 반영한다.
22대 국회는 5월 말 임기 개시와 함께 금융 관련 법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주까지 접수된 금융권 관련 법안은 26건이다. 금융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법안 다수가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금융권이 걱정하는 횡재세가 조만간 발등의 불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길도 없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에게 횡재세 도입을 공개 촉구했다. 민주당은 최근엔 세목 신설보다 은행의 기존 출연금 등을 강화하는 등의 우회로를 찾고 있다. 은행의 서민금융보완계정 출연 비율을 2배로 높이고,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대출원금·이자 상환유예 등을 신청하면 받도록 하는 서민금융지원법 개정안과 은행법 개정안이 이런 맥락이다. 가산금리 원가를 공개하라는 법안도 같은 맥락이다. 횡재세 공세의 교두보일 것이다.
국회는 포퓰리즘이 만연한 유럽에서도 횡재세 논란이 크게 불거지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최근 횡재세 일부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기존 소비세에 횡재세까지 더한 부과는 이중과세 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정치금융 공세는 언제 어디서나 금융 산업을 위축시키고 시장 경제의 자생력과 효율성을 떨어뜨리게 마련이다. 금융의 팔을 비트는 입법 폭주는 가뜩이나 어려운 민생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국내 금융사들은 지난해 말 2조 원대의 민생금융지원방안을 내놨다. 정부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이런 관치의 바통을 이어받는 것이 입법부 책무일 순 없다.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는 소임을 다하는 대신 엉뚱하게 힘자랑이나 하니 “정치금융이 더 걱정”이란 하소연이 나오는 것이다. 자중자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