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일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후임으로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내정했다. 방통위는 정치권의 정쟁 대상으로 전락하며 13개월간 수장을 세 차례나 교체했다. 이로 인해 인앱결제 강제 법안,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 이동통신 3사의 담합 의혹과 같은 시급한 현안들이 뒷전으로 밀리며 업무 마비에 처하게 됐다.
방통위는 네이버가 뉴스 검색 알고리즘을 특정 언론사에 유리하게 조작하는 데 개입했다는 의혹에 지난해 9월부터 조사에 돌입했지만 아직 결과를 내놓고 있지 않다. 지난해 10월에는 구글과 애플의 인앱결제 강제에 대한 부당한 행위로 최대 68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잇따른 수장 교체와 번복된 개점휴업 등으로 인해 9개월째 과징금 부과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통신 주무부처인 방통위는 이동통신사 판매장려금 담합 문제에 대해서도 공정거래위원회와 갈등을 해결해야 하지만 수장이 교체되면서 동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공정위는 이동통신사 담합 의혹과 관련해 4조 원 대 과징금을 예고했다. 이에 김홍일 전 위원장은 방통위가 제시한 단통법 가이드라인을 준수한 것으로 담합이 아니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지만, 위원장 교체로 당분간 적극적인 대응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더불어 방통위는 미디어 정책을 종합적으로 관리·규제하는 통합미디어법 제정과 콘텐츠 사용료 대가 산정 제도 개선, 단통법 폐지 등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신임 방통위원장 후보자의 1순위 해결과제는 공영방송 개혁이다. 이 후보자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방통위원장으로 내정된 후 많은 시간을 할애해 공영방송 이사교체를 비롯한 공영방송에 대한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바이든 날리면’, ‘청담동 술자리 보도’, ‘김만배 신학림’ 보도 등을 언급하며 “이 정부가 출범한 이후 나온 보도들로 가짜 허위 기사들이다. 정부가 방송장악을 했다면 이런 보도가 가능했겠나”라면서 “특정 진영, 특정 정당에선 이 정부가 언론장악, 방송장악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며 야당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공영방송 이사들의 임기가 끝나는데 임기가 끝나면 마땅히 새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면서 “임기가 끝난 공영방송 이사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자가 공개적으로 야당 공세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인사청문회를 둘러싸고 여야의 대치가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야당은 방송장악을 이어나가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직격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씨는 MBC 세월호 참사 오보 책임자, MBC 노조탄압의 주역”이라며 “특히 MBC 사영화를 밀실에서 추진하다 들통났던 적도 있다는 점에서 MBC 장악용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 후보자가 선임된다 하더라도 이동관·김홍일 전 방통위원장과 비슷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야당이 2인 체제의 위법성을 강조하며 탄핵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이 전 위원장이 공영방송 야권 이사 해임과 보도채널 민영화를 밀어붙인 것을 탄핵 소추 사유로 들었고 이 전 의원장은 탄핵표결이 다가오자 사의를 표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 전 위원장이 해결하지 못한 YTN 최대주주 변경을 허가한 데 이어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교체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자 야당이 탄핵카드를 꺼낸 것이다. 이 후보자도 방문진 이사 교체를 마무리 짓고 자진 사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기존 방통위원장이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정책을 신임 위원장이 연속적으로 이어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사업의 불확실성이 있다”며 “첨예한 정쟁 때문에 유료방송이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활성화 정책이 뒷전으로 밀리게 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