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이 또 급증세다. 어제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4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총 710조7558억 원으로 6월 말 대비 2조1835억 원 증가했다. 이 속도대로라면 7월 가계대출 증가 폭은 2021년 7월 이후 가장 많이 불어났던 6월 기록을 경신할 공산이 크다.
집값도, 전셋값도 거침없이 치솟는다. 가계대출과 무관치 않은 시장 동향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20% 올라 약 2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수도권도 지난주 0.07%에서 이번 주 0.10%로 커졌다. 아파트 거래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두드러진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5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계약일 기준)은 4935건으로 3년 만에 가장 많다. 경기부동산포털 집계 결과 같은 달 경기도 아파트 거래량은 1만186건으로 2021년 8월 이후 최고다. 전임 문재인 정권 때 민생을 강타한 부동산 광풍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가계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택담보대출이다. 디딤돌·신생아특례대출 등 1%대의 초저금리의 정책금융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신생아특례대출의 경우 부부합산 소득 제한 요건이 지난해 연간 7000만 원에서 올해 하반기 2억 원으로 늘었다. 내년에는 2억5000만 원으로 또 상향된다. 지난해에 이어 30대가 아파트 거래를 주도하고 있다.
국가 경제의 최대 뇌관인 부채 리스크를 등한시한 정책금융이 ‘영끌’ 심리를 부채질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정책 신뢰를 무너뜨리는 오락가락 행보의 허물도 크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일 17개 은행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가계대출 자제를 요구하며 현장 점검을 예고했다. 가계부채가 급증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정책금융을 무분별하게 풀고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마저 졸속으로 연기해 투기 본능을 일깨운 것은 금융 당국이다. 누가 누구를 압박하는 건가. 이런 엇박자가 없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앞서 2일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국지적 주택 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를 탓하면서 가계부채 문제를 우려했다. 하지만 왜 4~5월 가계대출이 10조 원 풀리고 아파트값은 15주 연속, 전셋값은 59주 연속 치솟았는지에 대한 자성과 숙고는 잘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정부가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않았는데도 시장이 괜히 탐욕을 부리겠나.
경제 회생과 민생 지원은 포기할 수 없는 정책 목표다. 하지만 구조조정 없이 거품을 키우는 접근법은 국가적 자충수가 되게 마련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왜 장기화했는지 반추할 일이다. 긴장의 끈을 조여야 한다. 차입 투자 광풍이 다시 거세게 불면 민생도, 정권도 결딴난다. 시행착오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 PF, 자영업자·소상공인 부채, 가계부채, 제2금융권 건전성 등 네 가지 부문에서 리스크가 쌓여 있다”면서 ‘연착륙’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핵심을 짚었지만, 해결책을 찾으려면 갈 길이 멀다. 정교한 대처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