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어제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4’를 열어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 설계자산(IP) 등 밸류체인 협력사들과 함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태계 확장에 나선다고 밝혔다.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은 “새로운 기술혁신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SK하이닉스는 앞서 지난달 말 경영전략회의에서 2028년까지 103조 원을 반도체에 투자하기로 했다. 반도체위원회도 신설했다.
삼성·SK의 각개약진은 지구촌 차원의 반도체 패권 경쟁을 겨냥한 적극적 대응이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미국 중국 등 주요국 정부와 경쟁사는 하나같이 인공지능(AI) 시장 확대와 맞물리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호황기) 대비에 분주하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는 내년 자본지출(설비투자) 규모를 최대 50조 원으로 올해보다 13%가량 늘린다. 2나노미터(nm, 1nm=10억분의 1m) 반도체 연구개발(R&D) 확대 등에 쓴다고 한다. 이 회사는 조만간 2나노 제품을 시험 생산하고 내년엔 양산에 들어간다. 일본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반도체 산업 부활을 꿈꾸고 있다. 소니그룹과 미쓰비시전기 등 8개 기업은 2029년까지 5조 엔(약 43조 원) 규모의 반도체 설비투자를 한다. 미국, 중국 기업들도 AI 반도체 등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각국 정부는 천문학적 규모의 보조금도 아끼지 않고 있다.
여의도 국회에서 모처럼 반가운 기류가 조성되고 있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이 반도체 산업에 100조 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투자세액 공제율을 높이는 특별법(K칩스법)을 대표 발의한 데 이어 그제 국민의힘 박영수 의원은 보조금을 지급할 법적 근거를 명시한 법안을 발의했다. 여야가 앞다퉈 반도체 지원에 나선 형국이다. 반도체 입법 경쟁은 박수를 받고도 남을 일이다. ‘국가 대항전’으로 치닫는 경쟁 판도로 미루어 반도체 기업 역량에만 기댈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와 정치권의 반도체 지원은 생색만 내는 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할 일이다. 주요국 사례를 본보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기업별로 수천억 원에서 수십조 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퍼붓고 있다. 중국이 지난해 세계 반도체 부문 벤처캐피털 투자의 90%(30조6000억 원)를 차지했다는 프레킨의 보고서도 있다. 일본 총력전도 예삿일이 아니다. 특히 구마모토현의 TSMC 1공장이 지난 2월 단 22개월 만에 완공된 데 이어 지난달 제2공장 용지 조성 공사가 시작됐다는 소식은 여간 놀랍지 않다. 이런 반도체 속도전이 대체 뭘 겨냥하겠나. 여기서 위기감을 못 느낀다면 눈이 있어도 못 보고 귀가 있어도 못 듣는 것이다.
여야의 반도체 입법 경쟁도 좀 더 치열하고 절박하게 펼쳐져야 한다. 박 의원 안대로 보조금을 푼다면 그 무엇보다 적정선을 둘러싼 건설적 고민과 논쟁이 필요하다. 설비투자 보조금이 최적 규모로 풀리면 국제 경쟁 판도를 바꿀 수 있고 재정 부담은 최소화할 수 있다. 여야는 바로 이런 쟁점을 놓고 의정 능력을 겨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