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실 매머드는 1만 년 전 멸종한 게 아니라 인류의 눈에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소수의 매머드가 시베리아 북동부 본토와 140㎞ 떨어진 북극해의 브란겔섬에 고립된 채 6000년을 더 살다가 불과 4000년 전에야 멸종했다.
약 1만2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육지가 제주도 4배 면적의 섬이 되면서 이곳에 살던 털매머드가 고립됐지만, 전화위복으로 무인도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털매머드는 지금까지 알려진 10종의 매머드 가운데 한 종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길고 촘촘한 털 덕분에 추위에 잘 적응했고 덩치도 아프리카코끼리만큼이나 컸다. 이들이 북위 71도 고위도인 브란겔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털매머드가 살았던 6000년 동안 무리의 크기 변화나 갑작스러운 멸종의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지난주 학술지 ‘셀’에는 브란겔섬에 살았던 털매머드 14마리의 게놈과 마지막 빙하기 때 시베리아 동부에서 살았던 털매머드 7마리의 게놈을 비교해 위의 질문에 답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스웨덴 고유전체학센터가 중심이 된 유럽의 공동연구자들은 브란겔섬의 영구동토층에서 발굴한 털매머드 개체들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 13개체에서 게놈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기존에 해독된 브란겔섬 털매머드 게놈까지 14개체가 살았던 시기를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으로 분석한 결과 멀게는 9200년 전에서 가까이는 4300년 전으로 4900년에 걸쳐있었다.
브란겔섬 털매머드 14개체의 게놈과 5만2000년 전에서 1만2000년 전까지 빙하기에 살았던 털매머드 7개체의 게놈을 비교하자 예상대로 브란겔섬 매머드의 유전자 다양성이 훨씬 낮았다. 분석 결과 수면 상승으로 브란겔섬이 고립됐을 당시 매머드는 불과 8마리 내외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다행히 천적(사람)이 없고 섬이 넓어 개체 수는 200~300마리까지 불어났다. 그럼에도 근친교배의 결과라 여전히 유전자 다양성은 낮았고 생존에 불리한 돌연변이도 조금씩 쌓였다.
그러다 4000년 전 갑자기 털매머드가 멸종한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이 섬에 들어와 씨를 말렸다고 생각했지만, 고고학 유물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사람이 진출했을 때는 이미 털매머드가 멸종하고 400년이 지난 시점으로 밝혀졌다. 아쉽게도 이번 연구 결과 역시 털매머드 멸종 원인을 명확히 밝히지는 못했다. 다만 게놈에 해로운 돌연변이가 축적되고 면역 관련 유전자 다양성도 낮아지면서 신종 병원체가 유행했거나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가 생겼을 때 버티지 못하고 절멸한 것으로 보인다.
브란겔섬 털매머드 게놈 연구는 오늘날 소수의 개체만 남아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동물들의 보존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자바코뿔소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두 곳에 불과 수십 마리만 남아있는데, 브란겔섬의 털매머드처럼 유전자 다양성이 낮다. 따라서 이들의 건강 상태와 신규 병원체의 유입 여부 등을 추적해 절멸할 상황에 놓이지 않게 관리해야 할 것이다.
수년 전부터 몇몇 과학자들이 매머드 부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진짜 매머드를 되살리는 건 아니고 매머드의 게놈 정보를 바탕으로 아시아코끼리의 게놈에서 10여 개의 유전자(주로 겉모습과 기온 적응에 관여하는)를 매머드 유형으로 바꾼 세포를 코끼리 대리모의 자궁에 넣어 매머드처럼 생긴 아시아코끼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번 세기 안에 부활한 매머드가 광활한 시베리아를 누빌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