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곳곳서 시위대 등장
미국 신규 제재 가능성 제기해
대선과 관련해 부정선거 의혹이 커진 베네수엘라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대한 나라 안팎의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3년 마두로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던 베네수엘라 민심은 이번 선거로 더욱 들끓었다. 미국이 신규 제재 카드를 고민하는 가운데 주변 우호국마저 베네수엘라와 선을 긋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한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대선 결과에 반발한 수백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카라카스 최대 빈민가로 꼽히는 페타레부터 카라카스 국제공항까지 행진하며 ‘자유’를 외쳤다. 시위대 일부는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과 맞섰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기도 했다. 카라카스 시내에서 총성이 여러 차례 들렸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X(엑스·옛 트위터)에서는 팔콘주에서 시위대가 마두로 대통령의 스승으로 불리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동상을 무너뜨리는 영상도 올라왔다.
베네수엘라 민심의 근원지는 전날 발표된 대선 결과다. 엘비스 아모로소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장은 이날 0시 10분쯤 “80%가량 개표한 결과 마두로 대통령이 51.2%의 득표율로 1위를 기록했다”라며 마두로 대통령의 당선을 선포했다. ‘민주 야권 연합’ 소속의 야당 지도자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75) 후보는 44.2%의 득표율에 그쳤다고 밝혔다. 전날 투표 마감 직후 나온 출구 조사와 정반대의 결과였다.
중도보수 성향 민주 야권의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 측은 이날 오전 “아침까지 개표 결과의 40%에 해당하는 데이터만 확보할 수 있었다”며 선관위의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서방 언론도 베네수엘라 정부가 10여 년 전 도입한 전자투표 시스템으로 개표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선관위가 투표소에 몰린 유권자들의 신분 확인 시간을 고의로 지연시키거나 투표소 입장 인원을 극소수로 제한하는 등 갖가지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로 선관위는 실시간 개표 상황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의 부정선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에 집권한 마두로 대통령은 재임에 도전했던 2018년 부정선거 의혹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미국은 이듬해인 2019년 1월 베네수엘라의 주 수입원인 원유와 가스 수출을 봉쇄하는 제재를 내렸다.
이번 선거 이후 국제사회의 비판과 우려도 커졌다. 호세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모든 투표소 기록이 공개되고 검증될 때까지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평소 마두로 정부에 우호적인 견해를 밝혀온 ‘남미 좌파 대부인 브라질 행정부마저 마두로에 대한 축하 인사 없이 “우리는 개표 과정을 자세히 주시하고 있으며, 결과에 대한 공정한 검증을 통해 베네수엘라 국민 주권의 기본 원칙이 준수돼야 함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새로운 제재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마두로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조처를 하는지에 따라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 정책을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마두로 대통령과 야당이 올해 대선 로드맵에 합의하자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가스 분야 6개월 거래허가를 발급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완화했다. 그러나 마두로 대통령이 야권의 유력 주자의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하자 올해 4월 다시 제재를 내렸다.
베네수엘라 난민 유입을 막고, 석유 공급을 늘리기 위해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완화했던 미국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자칫 추가 제재로 난민 문제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엔 추산에 따르면 현재까지 총 770만 명이 베네수엘라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