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약 3만8000명 입소…657명 사망
1984년 집 주소를 아는 아동에 한해 가정방문을 통한 귀가조치가 이뤄졌다. A 씨는 기억을 더듬어 집을 찾아갔지만, 당시 집에 아무도 없어 다시 시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두 달 후 A 씨의 누나가 찾아왔다. 형제복지원에서 퇴소한 A 씨는 서울로 올라가 취업했다. 구타와 욕설이 난무한 서울살이를 견디지 못한 A 씨는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고자 파출소를 찾았다. A 씨는 파출소에서 아동상담소로, 이후 다시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져 1987년 4월까지 수용됐다.
1970~1980년대 공권력에 의해 시설에 감금되고 강제노역‧폭행 등 가혹행위에 시달렸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또다시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37민사부(재판장 이상원 부장판사)는 지난달 18일 강모 씨 등 6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총 14억4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청구액 40억8000만 원의 약 35%를 인정했다.
위자료 액수는 앞서 나왔던 판결들과 동일하게 수용 기간 1년당 8000만 원 수준으로 책정됐다. 약 1~5년 동안 형지복지원에 수감됐던 원고들의 위자료는 8000만~4억 원으로 정해졌다.
1960년 형제육아원으로 시작한 형제복지원은 1975년~1987년 부랑인을 단속‧선도한다는 목적으로 운영된 전국 최대 규모의 부랑인 수용 시설이다. 1987년 3월 22일 직원들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사망하고 35명이 집단 탈출하면서 그 실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12년 동안 약 3만8000명이 입소했으며 확인된 사망자 수는 657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복지원 운영자였던 박인근 원장은 1987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징역 10년과 벌금 6억8000만 원, 2심에서는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이후 몇 차례의 파기‧환송심이 이어졌고, 1989년 박 원장은 횡령 등 일부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된 사람은 구타 등 가혹행위와 노동력 착취를 당했고 아동들은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며 “이 사건은 공권력의 적극적 개입으로 장기간 이뤄진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소멸시효가 완성돼 배상 책임이 없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돼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앞서 2018년 8월 헌법재판소는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 조작 의혹 사건 등에서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에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은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인정됐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하모 씨 등 26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강제 수용된 기간 어려운 시간을 보내신 원고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국가가 145억8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