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의 많은 원인 중 하나인 ‘부정행위’는 간통(성관계)을 포함하는 보다 넓은 개념이다. 간통(성관계)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부부의 정조 의무에 충실하지 아니한 일체의 부정한 행위를 말한다.
이혼 사건에서 주로 부정행위를 입증하는 증거로는 호텔에 출입하거나 다정하게 지내는 장면, 몰래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문자메시지, 녹음 파일과 녹취록이 제출되는 경우가 많다.
부정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 대부분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은밀하게 확보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원칙적으로 민사소송이나 가사소송에서는 위법수집 증거의 증거 능력 배제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배우자와 부정행위 상대방이 함께 있는 호텔이나 부정행위 상대방의 집을 찾아가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한 경우, 잠긴 배우자의 휴대전화나 이메일을 열어 문자메시지를 수집한 경우 등은 이혼 사건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다만 이때 주거침입죄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에 해당해 형사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부정행위의 증거로 많이 사용되는 녹음파일과 녹취록의 증거능력에 관해 이를 명시한 법률 규정이 있다는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고, 이를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배우자와 부정행위 상대방 간의 대화를 녹음하기 위해 집안이나 차량 등에 몰래 녹음기를 설치한 경우 그 대화 내용은 이혼 사건에서도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
같은 취지에서 대법원은 최근 배우자의 휴대전화에 몰래 설치한 ‘스파이앱’을 통해 부정행위 상대방과 나눈 대화와 전화 통화를 녹음한 녹음파일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을 근거로 증거능력을 부정한 바 있다.
결국 부정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배우자와 부정행위 상대방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것은 그 행위 자체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죄에 해당해 형사책임을 부담할 수 있고,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몰래 녹음한 녹음파일과 녹취록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없는 셈이다.
다만 통신비밀보호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는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하는 것이므로, 상대 배우자 혹은 부정행위 상대방과 통화하면서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면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므로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특히 차량 블랙박스와 홈캠에 배우자와 부정행위 상대방의 대화나 전화 통화 내용은 주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처음부터 배우자와 부정행위 상대방 간의 대화를 녹음할 목적으로 설치한 것이 아니라면 블랙박스와 홈캠의 자동 녹음기능에 따라 녹음된 것에 불과하므로, 통신비밀보호법에서 금지하는 녹음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또 ‘청취’는 타인 간의 대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그 내용을 실시간으로 엿듣는 행위이므로, 이미 대화가 종료돼 기기에 파일의 형태로 보관 중인 녹음물을 재생해 듣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에서 금지하는 청취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정성균 변호사(법무법인 LKB & Partners)는 “성급하게 무리한 방법으로 부정행위를 밝히려 하기보다는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법 위반으로 형사책임이 발생할 수 있는지, 확보한 증거가 실제 재판에서 사용될 수 있는지를 차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움]
정 변호사는 부장판사 출신으로 서울가정법원 가사소년사건 전문법관을 지냈습니다. 현재 법무법인 LKB & Partners의 가사상속팀 공동팀장으로 이혼 및 상속재산분할, 유류분 등 각종 가사상속 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