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헌법재판소가 7일 왕실모독죄 개정을 추진한 제1당이자 야당인 전진당(MFP)에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에 국제사회가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이라고 잇따라 비판하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태국 헌재는 이날 전진당의 왕실모독죄 개정 추진이 입헌군주제 전복 시도로 간주된다며 선거관리위원회의 요구대로 전진당의 해산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헌재는 또한 피타 림짜른랏 전 전진당 대표, 차이타왓 뚤라톤 현 대표 등 전진당 전현직 지도부 11명의 정치 활동을 향후 10년간 금지했다. 선거에 출마할 수 없고 정당 설립이나 가입도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차기 총리 후보 지지도 1위 피타 전 대표도 정치 생명을 이어가기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다른 전진당 소속 의원들은 60일 이내에 다른 정당으로 소속을 옮기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전진당은 헌재 결정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9일 신당을 창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진당은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왕실모독죄의 개정을 비롯해 군부 개혁ㆍ징병제 폐지ㆍ독점기업 해체ㆍ동성결혼 합법화 등 파격 공약을 내세우며 젊은층의 전폭적 지지를 얻으며 다수 의석을 얻었다. 이에 정권 교체 기대가 고조됐다. 하지만 왕당ㆍ보수파가 연합해 반대함에 따라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40대 피타 후보는 의회 총리 선출 투표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며 집권에는 실패했다.
앞서 태국 헌법재판소는 1월 왕실모독죄 개정 추진이 입헌군주제 전복 시도에 해당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고 개정 추진을 철회할 것을 명령했다. 이어 3월에는 선관위가 전진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왕실모독죄로 불리는 태국 형법 112조는 왕실 구성원 또는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거나 왕가에 대한 부정적 묘사 등을 하는 경우 최고 징역 15년에 처하도록 한 법이다. 태국에서는 국왕과 왕실은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긴다. 개혁 세력은 이 법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인사들을 탄압하는 데 악용돼 왔다면서 법의 개정이나 폐지를 요구해왔다.
이에 미국, 유럽연합(EU)과 인권단체들은 이번 헌재의 전진당 해산 명령을 규탄했다.
미국 국무부의 매슈 밀러 대변인은 “태국 헌재의 결정은 태국 민주주의 진보를 위협하고, 강력하고 민주적인 미래를 바라는 태국 국민의 열망에 반하는 것”이라며 “동맹국이자 친구로서 우리는 완전 완전한 포용적 정치 참여를 보장하고 민주주의와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U도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민주주의 체제는 다수 정당과 후보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태국의 법률이 비판자들을 위협하기 위해 남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목소리를 냈다. 아시아인권포럼은 “민주주의 원칙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