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희 부국장 겸 금융부장
빚 무서운줄 몰라 가계부채 ‘비상’
정부, 일관된 주택공급 확신 줘야
술자리에서 들은 말 한마디가 머릿속에 맴돈다. “너는 결혼 안했으니 집 없어도 되지 않냐.” 참 희한한 논리다. 자가 주택이 결혼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도 되나. 물론 여러 식구가 살 집이 필요없다는 뜻이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잠깐, 우리나라에서 집이 정말 ‘사는 곳’으로만 여겨졌던가. 부를 쌓기 위한 수단 아니었나.
집 얘기만 나오면 10년 전 그때가 생각난다. 박근혜 정부 시절 ‘초이노믹스’(최경환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제정책)는 ‘빚내서 집 사라’였다. 부동산 광풍이 한창이던 2005년, 8·31 부동산 후속대책 일환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이 도입됐다. 2002년 담보인정비율(LTV)도입으로도 잡지 못한 투기열풍을 막을 ‘강력한’ 보완책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10년 뒤인 2014년, 초이노믹스는 수많은 부동산 규제들이 폐지되거나 완화될 때도 건드리지 않았던 LTV와 DTI를 수정하며 당장 집을 사라는 시그널을 줬다.
또 다시 10년여가 흘러 윤석열 정부 기조도 비슷하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부동산 규제는 완화됐고 올해 1월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은 젊은 친구들이 집을 살 수 있는 불쏘시개가 됐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족의 ‘빚투’(빚내서 투자)매수가 이어졌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11일까지 신고된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 건수는 6911건(계약일 기준)으로 집계됐다. 7월 계약분의 신고 기한이 이달 말까지인 것을 감안하면 지난달(7450건) 거래량을 넘어 2020년 12월(7745건) 이후 3년 7개월 만에 최다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2020년 12월 거래량을 돌파할 경우 2020년 7월(1만 1170건) 이후 4년 만에 가장 많은 규모다.
다들 위험한 춤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뛰어드는 이유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몇 년 전 아파트 매입 시기를 놓쳐 ‘벼락거지’를 경험했던 그들이 ‘불나방’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전국 아파트를 가장 많이 구입한 연령대는 30대 (26.3%)였다.
이들의 종잣돈은 대부분 은행 돈이다. 지난 달 은행권에서 불어난 주택담보대출은 5조6000억 원. 올해 주담대 누적 증가액(1~7월)만 21조9000억 원에 달한다. 부동산 시장이 회복된 영향도 있지만 최근 주담대가 불어난 것은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한도 규제인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 시점을 9월로 미루면서 ‘막차 수요’가 몰린 영향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국 정부가 가계부채 급증을 부추겼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이 시장 불안을 키운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에 ‘빚으로 일어서자’는 이상한 믿음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예금은행 가계대출이 1115조 5000억 원이다. 우리나라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각자 2000만 원 넘는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다.
빚으로 일어선 나라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빚내서 산 집이 얼마나 오래 ‘내 집’일 수 있을 지는 풀리지 않는 난제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위험 수준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 4위다. 파리 올림픽 순위 (8위)보다 훨씬 높다.
정부는 이제라도 일관된 정책을 펼쳐야 한다. 빚으로 집을 사라고 부추기기보다는 안정적인 임대주택 공급에 힘써야 한다.
나는 집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 자산으로써는 여전히 관심 대상이다. 나만 투자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지만, 빚을 내서 올라탈 생각도 없다.
빚의 춤사위에 휩쓸리지 말고, 집 값의 노래에 현혹되지 말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안정된 삶이다. 빚더미 위 올려진 ‘내 집’, 그건 그냥 비싼 텐트일 뿐이다. cho77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