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배심원 7대 0’ 무죄…대법 “‘새로운 증거조사’로 평결 못 뒤집어”

입력 2024-08-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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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만 검토해 유죄로 바꿀 수 없다” 기존 법리에서 진일보

“참여재판제도 도입 취지‧정신 살펴야”

화물트럭 구입 후 지입차량 사업
‘투자금 32억 가로챈 사기’ 혐의
수익금 배분 명목 유인…檢 기소

억울함 호소한 피고인에 참여재판
‘1심 무죄→2심 유죄’ 정반대 결론
大法, 파기‧환송…“추가조사 신중해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배심원 전원의 의견이 무죄로 일치했고 재판부도 이 같은 평결 결과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한 경우, 2심에서 추가적인 ‘증거 조사’를 벌여 재판 결과를 유죄 판결로 뒤집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존중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항소심이 ‘기록 검토’만을 통해 유죄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일찌감치 정립된 법리인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진일보한 판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죄로 기소된 피고인 A 씨에 대한 상고심을 열고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1심 법원의 판단을 뒤집어 유죄라고 인정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고 18일 밝혔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원심(2심)의 추가적인 증거조사는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국민참여재판 항소심의 심리‧증거조사에 관한 법리,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하는 증거재판주의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수익금 약정’ 존재 두고 논쟁…1심, 참여재판 회부

배심원 평결 결과 ‘유죄 0명’ vs ‘무죄 7명’

피고인 A 씨는 2009년부터 대부업자 피해자 B 씨에게 차량을 담보로 제공하고 소액 대출을 받으면서 알게 된 사이다. A 씨는 2011년 12월 서울 구로구 B 씨 사무실에서 본인 명의 계좌로 8000만 원을 송금 받고, 이 때부터 2013년 7월까지 총 31억5900만 원을 받아 가로챘다는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A 씨에 대해 변제할 의사나 능력 없이 B 씨에게 원금과 수익금을 지급하겠다고 거짓말을 해서 투자자금을 편취했다면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를 적용, 재판에 넘겼다.

A 씨는 B 씨에게 수익금을 주겠다고 약속한 사실 자체가 없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또한 B 씨에 대한 편취의사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해당 사건은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에 회부됐다. 국민참여재판을 거친 1심에서 배심원 7명은 전원이 만장일치로 A 씨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배심원 가운데 유죄 의견은 단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이러한 ‘무죄’ 결론은 검찰 공소사실에 증명이 없다고 본 당시 재판부 심증에까지 부합하면서 그대로 채택됐다.

하지만 2심 법원은 1심을 파기하고, A 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유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추가적인 증거조사를 실시하고 “원심 및 당 심이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피고인(A 씨)이 화물트럭을 구입한 후 지입차량 관련 사업을 해서 수익금을 주겠다고 피해자(B 씨)를 기망해 피해자로부터 돈을 편취했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2심 재판부는 특히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하고 그 평결이 재판부의 심증에 부합해 1심 법원이 이를 그대로 채택했더라도, 1심에서는 물론 항소심 법원에서 채택‧조사된 증거들까지 종합해 볼 때 그 평결과 1심 법원의 판단이 명백하게 잘못됐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거나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부당한 경우 예외적으로 그 평결과 1심 법원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설시했다.

▲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입구. (뉴시스)

大法 “증거조사 필요성 인정되는
예외적 경우에 한정해 실시해야”

“배심원 만장일치 의견이 갖는 무게 존중해야”

무죄에서 유죄로 결론이 뒤집힌 A 씨 측이 상고하면서 사건은 최종적으로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대법원은 또다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도입한 배경과 취지, 실질적 직접 심리주의 의미와 정신, 형사재판 항소심 심급 구조의 특성, 증거조사 절차에 관한 형사소송법령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대법원은 “공판준비 기일을 필수적으로 거친 다음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한 1심 법원에서 배심원이 만장 일치의 의견으로 내린 무죄 평결이 재판부의 심증에 부합해 그대로 채택된 경우라면, 그 무죄 판결에 대한 항소심에서의 추가적이거나 새로운 증거조사는 형사소송법과 형사소송규칙 등에서 정한 바에 따라 증거조사의 필요성이 분명하게 인정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해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항소심에서 부수적‧지엽적 사정들에 주목해 의미를 크게 둔 나머지 1심 법원의 판단을 쉽게 뒤집는다면, 그로써 증거의 취사 및 사실의 인정에 관한 배심원의 만장일치 의견의 무게를 존중하지 않은 채 앞서 제시한 법리에 반하는 결과가 될 수 있으므로 이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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