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발전용량을 2003년 상반기 이후 최대 폭으로 확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19일(현지시간) 에너지정보청(EIA)을 인용해 올해 상반기(1∼6월) 발전용량이 20.2GW(기가와트) 증가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상반기 증가 폭보다 21% 늘어났다. 올 하반기엔 더 늘어나 연간 증가 폭이 42.6GW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전력 투자는 기본적으로 인공지능(AI) 시대에 대비한 포석이다. AI 연산의 핵심인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력 소모량은 2022년 기준 460테라와트시(TWh)다. 프랑스(425TWh), 독일(490TWh)이 1년간 사용하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2026년에는 620~1050TWh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 8000여 개 중 3분의 1가량이 미국에 몰려 있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거대 기술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면서 전력 공급 부족이 만성화하고 있다. 조지아주의 산업용 전력 수요는 이미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향후 10년간 지금보다 17배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는 진단도 있다.
미국 사례는 AI를 비롯한 첨단산업 경쟁의 속내를 보여준다. 전력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쟁에서 이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는 한국 또한 긴장의 끈을 바짝 조여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AI 기술 분야에서 G3(주요 3개국)로 도약하고 2030년 세계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10% 이상 달성하겠다”고 했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필수적인 전기와 공업용수는 정부가 책임지고 공급하겠다”고도 했다. 길을 제대로 잡았지만 인프라 투자 없이는 헛된 공약일 뿐이다. 특히 전력이 핵심이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는 2047년까지 622조 원의 민간 투자가 이뤄져 16개 반도체 팹이 세워진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팹이 들어설 용인 클러스터에만 수도권 전체 전력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0GW의 전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정부는 초기 수요는 3GW급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충당하고 나머지 7GW는 송전망을 확충해 지역에서 끌어와 공급하기로 했다.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수인데 21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된 후 22대 들어 감감무소식이다. 최악의 경우 수조 원을 들여 만든 반도체 생산 공장을 놀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지구촌은 열띤 경쟁을 벌이는데 여야는 팔짱만 끼고 있다. 국민이 어찌 믿고 안심할 수 있겠나.
올해 초 유럽연합(EU)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공동으로 사상 처음 원자력 정상회의를 열었다. 중국은 원전 20기 추가 건설을 승인했다. AI 패권 다툼을 위한 전력 충전을 위해 다들 그렇게 다급히 움직인다. 한국만 딴판이다. 전임 문재인 정권 시절엔 ‘탈원전’ 폭주로 우리 경쟁력의 원천인 원전 역량을 진창에 빠뜨리기까지 했다. 관련 법제 정비를 통해 원전 경쟁력부터 원위치시킬 일이다. AI 분야의 G3 청사진은 그다음에 제시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