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한국 금융 ‘빅뱅’이 필요하다

입력 2024-08-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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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연구원장ㆍ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강한 규제에 금융산업 육성 공염불
금융정책·감독은 고난도 전문 영역
대대적 혁파 없으면 추락은 불보듯

1988년 유럽중앙은행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설립되었다. 당시 세계금융의 중심지였던 런던은 유럽중앙은행이 프랑크푸르트에 설립되면 유럽 금융의 중심지가 런던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옮겨갈까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영국의 대처 총리는 1986년 이른바 ‘빅뱅’을 단행했다. 런던 금융시장의 완전한 규제혁파였다. 그 결과 유럽중앙은행의 프랑크푸르트 설립에도 불구하고 런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국제금융 중심지로서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2024년 3월 런던에서 발간된 국제금융센터지수에서 런던은 미국 뉴욕에 이어 세계 2위의 국제금융센터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13위에 그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3위, 홍콩이 4위, 상하이가 6위, 서울이 10위, 선전이 11위, 베이징이 15위, 도쿄가 19위, 부산이 27위, 광저우가 29위, 칭다오가 31위에 랭크되고 있다. 서울이 10위권에 랭크되고 있다고 해서 서울이 국제금융센터로서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평가점수에서 싱가포르가 742점, 홍콩이 741점인데 비해 서울은 735점, 부산은 717점에 불과하다.

한국은 2003년 ‘동북아 금융허브 로드맵’을 발표하고 2008년 8월 ‘제1차 금융중심지 기본계획’(2008~2010년)을 수립했다. 금융산업 선진화, 금융인프라 선진화, 자산운용시장 육성, 금융회사 집적 여건조성을 목표로 2009년 1월 서울(여의도) 및 부산(문현)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했다. 그러나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건물에는 비금융회사들이 대부분 입주해 있을 정도로 외국금융회사들의 한국진출이 확대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들기까지 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나마 국제금융센터 건물마저 매각한다는 안타까운 보도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부산 금융중심지는 부산블록체인특구 지정과 더불어 디지털금융중심지를 추진하고 있으나 지지부진하다. 가장 큰 원인은 부산블록체인특구만 지정되었지 특구의 핵심자산인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가 여전해 외국의 블록체인회사들이 부산에 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가상자산(코인)초기공개(ICO)도 인정하지 않고 있어 한국회사들마저 싱가포르 주크 등 해외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니 부산블록체인특구가 활력이 있을 리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암흑기를 지나면 좀 나아지려니 했으나 금융당국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다. 애꿎은 여의도 한국산업은행만 이전해 간다고 난리다.

현재 한국의 금융산업이 전체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안팎이다. 한때 금융위원장이 10년 안에 10%로 올린다는 야심찬 ‘10-10 정책’을 추진했지만 여전한 높은 규제 속에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경제개발 이후 증가세를 지속하던 제조업 비중이 ‘87체제’ 이후 높은 임금상승률과 강성 민노총의 등장으로 1988년 31%를 정점으로 수평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농림어업의 비중은 큰 폭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서비스업 비중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서비스업 중에서는 도소매 음식숙박업 부동산업 등 저생산성 서비스 비중이 크게 확대되고 금융업 비중은 늘지 않아서 한국경제 저생산의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금융산업이 발전하면서 금융산업에 필요한 우수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유수 글로벌 경영대학원들이 대거 진출하고 자연히 각종 국제회의가 많이 열리면서 마이스(MICE) 산업도 발전했다. 이들은 모두 고임금 인재들이 필요한 산업들이어서 싱가포르의 소득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2024년 1인당 GDP는 8만8447달러까지 전망(IMF)되어 한국은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선진국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한국경제의 고부가가치화를 견인해야 할 한국금융산업이 이처럼 낙후되고 있는 데는 두말할 필요 없이 한국특유의 무소불위 규제가 가장 큰 원인이다. 영국과 싱가포르의 공통점은 중앙은행 내에 금융담당 부총재를 두고 금융정책과 감독을 관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무소불위 규제에다 순환보직의 비금융 관료들이 지배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적어도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동안 금융을 다루어 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금융사고는 우연이 아니다. 부동산 PF, 플랫폼 이커머스 위기,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 지속, 겉도는 자본시장 밸류업 대책, 글로벌 페이 시대 개인정보 해외누출 등 연이은 금융사고는 오랜 경험이 축적된 전문성 있는 금융당국이라면 상당부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다. 전혀 사전 예방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가운데 사고가 연이어 나고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는 뒷북대책과 강화된 규제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다. 이제부터라도 전문가들이 금융빅뱅 수준의 규제혁파 등 잘하지 않으면 한국경제의 고부가가치화 견인은커녕 지금 있는 금융경쟁력마저 추락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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