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조작’ 쟁점 확대…檢 “공개된 적 없어” vs 정 대표 “공지했다”
압수수색 위법성 판단 남아…재판부, “재판에 실익 있나 살펴봐야”
지난주 발생한 법정 피습 사건으로 법원 경비가 한층 삼엄해진 가운데, 정상호 델리오 대표의 형사사건 1심 4차 공판에서 사건의 꾸준한 쟁점이던 ‘원금 보장’ 여부가 ‘약관 조작’까지 확대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판부 역시 조작 가능성을 언급한 가운데, 검찰과 정 대표 측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2일 오후 2시 서울남부지방법원 제306호 중법정에서 정상호 델리오 대표에 대한 형사사건 1심의 4차 공판이 진행됐다. 정 대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공판은 지난주 발생한 이형수 하루인베스트 대표 피습 사건으로 인해 기존보다 삼엄한 경비 상황에서 진행됐다. 법원은 보안 검색대부터 출입자의 소지품을 더욱 꼼꼼하게 점검하는 한편, 피고인 및 변호인단과 가까운 법정 내 1열에는 착석할 수 없도록 하는 등 경계를 강화한 모습이었다.
특히 델리오 사건의 경우 이미 10년 형을 선고받은 비엔드에스(B&S) 홀딩스 대주주 A씨나 하루인베스트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만큼, 법정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번 공판에서도 주요 쟁점은 델리오의 서비스가 ‘원금 보장을 약속했냐'는 점이었다. 정 대표 측은 공판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원금 보장을 약속한 적 없고, 델리오의 서비스는 원금손실의 위험이 있는 투자상품이라는 점을 거듭 주장해 온 바 있다.
여기에 이번 공판에서는 이와 관련한 약관 내용의 조작이 있었는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델리오의 약관은 2020년 4월을 시작으로 2021년 12월과 2023년 3월 총 두 차례 개정됐는데, 해당 개정약관 모두에는 원금손실이 이용자에 귀속된다는 등 델리오의 서비스가 투자상품임을 명시하는 내용이 없었다.
반면, 델리오 측은 2022년 9월에 실제 약관 개정 및 공지가 있었고, 여기에 원금보장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회생법원에 제출한 자료에도 2022년 9월에 게시해 이를(약관을) 다운받은 내용 및 전자결재 내용이 남아있다”면서 “온라인상에도 2023년에 해당 약관을 다운받아 달라는 내용이 있다”고 반박했다. 또 “해당 약관(2022년 9월)도 압수수색 과정에서 검찰이 가져갔지만, 증거로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반면, 검찰은 “해당 약관(2022년 9월 개정)은 내부 검토된 적은 있을지 모르지만, 공지된 적은 없는 약관”이라면서 몇 가지 근거를 들었다.
우선 검찰이 제시한 2023년 3월 개정 약관의 경우 개정을 위한 내부 공문이 존재했고, 해당 약관 개정을 통해 바꾸려고 한 내용이 델리오 측이 제시한 2022년 9월 개정 약관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2023년 3월 약관 개정 시점에서 유효한 약관은 2022년 9월 약관이 아니었다는 걸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검찰은 “2022년 11월 9일 고객이 델리오에게 약관을 요청해 델리오 측이 약관이 첨부된 메일을 보냈는데, 2021년 12월 약관이었다”면서 “2022년 9월 약관은 이용자에 공개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이 주장하는 증거 누락에 대해서도 “2022년 9월 7일 약관이 검토된 바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피해자가 많은데 이를 (유효한 개정약관이라고) 주장할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 역시 델리오의 약관 조작 및 증거 조작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판부에는 지금까지 약 50여 개의 엄벌 요청 탄원서가 제출되기도 했다.
이날 재판부가 배상신청인 일부에게 발언 기회를 주자, 현장에서는 정 대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언이 연이어 나왔다.
배상신청인 박 모씨는 “델리오에 비트코인 30개 이상을 예치했다”면서 “당시에 약관을 꼼꼼히 봤을 텐데, 원금 다 날릴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면 고작 1년에 이자 10%를 받겠다고 예치했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 대표가 주장하는) 위험 고지에 대해서는 코인 가격의 변동성에 대한 위험 고지를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코인 개수에 대한 투자손실은 예측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배상신청인 이 모씨 역시 “유튜브 등에서 정 대표가 나와서 델리오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설명한 영상이 많았다”면서 “당시 위탁운용은 얘기가 없었고, 수익 모델에 대해서도 원금 손실 위험이 없다거나, 아비트라지(차익거래)를 통해 3%, 2%씩 이윤을 내는 방법을 이용한다고 광고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터진 건 위탁운용인데, 위탁운용을 했다는 걸 알았으면 절대로 델리오에 예치할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쟁점은 검찰의 압수수색 위법성에 대한 것이었다. 델리오 측은 검찰이 압수물을 입수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정상호 대표)의 참여권 및 법률 대리인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고, 압수물에 대한 상세 목록을 제공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증거물의 증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 측이 압수수색 당시 사정 등을 근거로 일부 해명을 내놓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상세 목록을 작성해서 줘야하는데 그 과정을 생략했다고 하니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서 “재판부는 판례에 따라 판결을 하는데, 상세 목록이 없으면 위법하다고 판단하는 게 보통”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정상호 대표 측에 대해서도 “위법이 있어도 피고인이 이걸 다툴만한 이익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할 것 같다”면서 “지금 다투고 있는 건 편취의 고의가 없었고, 원금이 보장되지 않은 투자상품이라고 (이용자에) 고지했기 때문에 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압수수색의 위법성 주장은 사건의 실체랑은 전혀 관계없는 절차적 문제라서 피고가 다툴만한 것인지 의문이 있다”고 되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처음부터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수사를 통해 수사를 받았고, 정해진 결론을 도출한 것은 아닌가 싶다”면서 “수사 절차에서 위법성을 많은 점이 수사 시작을 의심케 하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공소사실조차도 서비스를 한데 뭉쳐서 금액을 크게 적시하고 있다”면서 “하나의 프레임을 만들고 피고인을 형사적 막대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몰아간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한편, 재판부는 다음 공판을 11월 4일로 잡고, 이때 주요 증인들을 불러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재판부는 이날 공판에서 나눈 여러 내용을 바탕으로 변호인단에는 10월 4일까지, 검찰에는 변호인단 의견서를 바탕으로 10월 25일까지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