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감원장 "대출 개입 쌔게 하겠다" 열흘만에 "실수요 제약 안돼"
오락가락 가계대출 관리 정책에 은행권·실수요자 '패닉'
5대은행, 20여차례 금리 올렸다, 30여개 대출제한 조치 내놔
김병환 금융위원장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 변화 없어…은행 자율에 맡겨야" 진화
‘혼돈’의 시작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입에서 시작됐다. 윤석열 정부 ‘실세’로 통하는 이 원장이 가계대출 규제과 관련해 열흘 간 내놓은 각각의 발언에 은행권은 혼란에 빠졌다. 이 원장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서둘러 대책을 내놨지만 돌아오는 건 ‘채찍’과 ‘선긋기’였다. 대출을 조이래서 금리를 올렸더니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은행들이 금리 외 제한 조치를 내놓자 이번에는 실수요자를 외면했다며 탓했다. 결국 차주들의 피해가 속출했고 은행 창구에는 민원과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금융당국 간 불편한 기류도 감지된다. 정책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 대신 감독기구인 금감원이 가계부채 현안에 ‘스피커’ 역할을 자처한 데다 ‘시장 개입’이라는 발언 등 노골적인 반시장적 행동에 금융위 내부에서도 불만이 쏟아졌다.
8일 금융당국 및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10일 은행장들과 만나 가계대출 관리 대책을 논의한다. 지난 4일 실수요자 및 전문가와의 간담회 이후 일주일 만이다. 은행권의 기계적인 대출 규제를 지적했던 그가 이날 어떤 발언을 쏟아낼 지가 최대 관심사다. 특히 6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가계부채 브리핑에서 “대출 관리는 금융회사 자율에 맡기는 것이 원칙”이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이후 첫 회동인 만큼 이 원장의 기조에 변화가 있을 지가 주목된다.
이 원장의 ‘입’은 올해 은행 대출시장에 최대 리스크였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이 지난 7~8월 두달 간 대출금리를 인상한 횟수는 총 22차례에 달한다. 이 원장이 7월 초 임원회의 “성급한 금리인하 기대와 국지적 주택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가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발언한 이후 릴레이 금리 인상이 이어졌다.
은행이 대출 수요를 누를 수 있는 첫 번째 카드가 ‘금리’였던 터라 이 원장의 발언이 불쏘시개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금감원이 은행들 ‘이자장사’에 판을 깔아주고 있다는 지적이 일자 지난달 25일 “금리를 올리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겨냥했다. 또 금감원은 27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대출 심사를 강화해 투기 수요를 잡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그러자 약 일주일 새 은행들은 총 30여개의 대출 축소 정책을 줄줄이 내놨다. 일부 은행은 무주택자에게만 전세대출을 내주는 ‘초강수’ 조치를 꺼내기도 했다. 결국 실수요자 피해로 이어지자 이 원장은 이달 4일 실수요자 피해를 주는 대책을 점검하겠다고 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은행 자율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은행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 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A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메시지를 낸 대로 발빠르게 대처한 것 뿐인데 대출시장의 혼란을 일으킨 주범으로 낙인 찍혔다”고 토로했다. B은행 관계자는 “정책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내부적으로 대책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감독기구인 금감원이 정책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려다 보니 시장에 혼선을 빚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원장의 발언이 은행권의 섣부른 정책이 실수요자 자금 이용을 제한한 것에 대한 우려라는 시각도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역학부 교수는 “은행의 건전성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의 대출공급관련 수위조절에 대한 언급은 적절하다”면서 “대출공급의 전격중단은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은행권에서 시작한 이슈라, 감독원장의 발언은 자칫 실수요자에게 피해가지 말아야 된다는 점에서 언급한 원론적 발언이라고 사료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