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열 코드박스(ZUZU) 대표
수십억 원의 자금을 투입해 제품을 개발했지만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업계 최고 수준의 개발팀을 갖추고, 적지 않은 R&D 비용을 써서 만든 제품이 왜 실패하는 걸까. 오랜 숙고 끝에 필자가 내린 결론은 처음부터 안 될 아이템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사업 아이템에 자신이 있다. 사업 아이템이 매력적이지 않았다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역경과 고난이 가득한 사업을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 했을 것이다. 해당 분야에 오랜 경력이 있고 전문가일수록 사업 아이템에 대한 검증보다는 제품 개발과 출시에 몰두한다. 그렇게 막대한 비용을 들여 출시한 대부분의 제품은 시장의 외면 속에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다.
스타트업 제품 개발 전략은 ‘우리는 어떤 제품이 시장에서 성공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많은 기업이 신제품 출시 전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시장 조사를 하지만, 시장 조사에서 꼭 필요하다는 제품이 막상 시장에 출시되고 나면 팔리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불상사를 막으려면 사업 아이템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품을 출시하여 직접 시장 반응을 확인하는 것 외에 사업 아이템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스타트업은 어떻게든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제품을 만들고 시장의 반응을 봐야 한다. 핵심 기능에만 집중한 최소기능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를 출시하고, 시장 반응에 따라 반복적 개선을 하는 린스타트업 방법론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MVP를 만드는 것도 사치니, 제품을 만들기 전에 제품이 있는 것처럼 시장 검증을 실제로 해보자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구글 최초의 엔지니어링 디렉터 알베르토 사보이아가 저서인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에서 소개한 프리토타입(pretotype) 방법론이다. 프리토타입은 제품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pretend) 빠르게 내놓고 테스트하자(prototype)는 제품 개발 방법론을 표현한 신조어이다.
스타트업에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투자 유치를 통해 1년 6개월의 런웨이를 확보했으면 이 시간 내에 이익을 내거나 후속 투자 유치에 필요한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 제품 개발에 1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면 이 기업이 시장 검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인 셈이다. 이 기회를 날리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 반면 제품 개발 기간을 3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면 여러 번의 시장 검증 기회를 갖게 된다. 이처럼 빠른 제품 출시는 성공의 확률을 높인다.
물론 빠른 실패만으로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 검증을 통해 제품을 시장 니즈에 맞게 빠르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업 가설은 대부분 틀렸지만, 그렇다고 100% 잘못된 가설도 별로 없다. 시장 반응을 살피고 기존 사업 아이템에 작은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 제품과 시장 간의 적합성을 찾아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피버팅 방법은 다양하다. 기존 제품 일부를 전체 제품의 핵심으로 바꿀 수도 있고, 반대로 기존 제품에 기능을 추가하여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만들 수도 있다. 제품의 대상 고객을 좁힐 수도 있고, 반대로 넓힐 수도 있다. 앱을 개발하던 회사가 플랫폼으로 확대할 수도 있고, 플랫폼 회사가 앱을 만들거나 PB상품을 제작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피버팅이 가능한 배경에는 린스타트업 혹은 프리토타입 방법으로 대표되는 사업 아이템의 빠른 검증 역량이 깔려 있다. 따라서 창업자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단 하나를 뽑으라고 한다면, “일단 출시하세요. 그리고 나서 만드세요”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