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금 밟고 있는 건 가속 페달일 수도 있다.”
국립과학수사본부에서 16년간 근무하면서 2400여 건의 교통사고를 감정한 교수가 최근 열린 자동차 급발진 관련 설명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급발진 의심 사고의 대부분은 인간의 오류(Human Error)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급가속 현상이 발생했을 때 운전자 스스로는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생각하지만 가속 페달을 밟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16명의 사상자를 낸 시청역 사고도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했으나 국과수는 급발진이 아닌 페달 오조작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국민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에 정부는 완성차 제조사에 ‘페달 블랙박스’ 장착을 권고하기도 했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의 조작 실수인지, 자동차의 결함인지를 명확하게 밝혀내기 위해선 페달 블랙박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페달 블랙박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사고 후 책임소재를 가리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사고 자체를 방지할 수 있는 기능은 없기 때문이다. 비용도 문제다. 제조사에 페달 블랙박스 설치를 의무화하면 비용이 상승하게 되고 이는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사후 조치보다는 실질적으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운전자 교육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내가 밟고 있는 게 가속 페달일 수 있다’는 인식만 심어줘도 사망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설사 급발진이 발생하더라도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는 무조건 서게 돼 있다. 따라서 급가속 현상이 발생했을 때는 양발로 페달을 밟아보는 것이 방법이다. 운전자의 오른발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더라도 왼발은 브레이크의 위치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고령 운전자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보다 더 빠르게 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내년 6월부터 모든 신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를 부착하도록 의무화했다. 전방에 장애물이 있는 상태에서는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아도 차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정부는 ‘사후약방문’이 아닌 국민의 실질적인 목숨을 살릴 방법부터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