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세이] 연금개혁, 미래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입력 2024-10-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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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박주민(앞줄 왼쪽 네 번째)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과 김동명(앞줄 왼쪽 여섯 번째부터) 한국노총 위원장,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회원들이 '노후파탄, 분열조장 윤석열 정부 연금개악안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연금개혁은 현재세대가 미래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의 문제다.

현재세대는 부모세대로부터 받은 게 많다. 부모세대는 비 새는 판잣집, 곰팡내가 진동하는 반지하, 좁아터진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고층빌딩과 아파트를 짓고, 고속도로와 철도를 깔고, 밤낮없이 공장에서 재봉틀과 기계를 돌렸다. 그 결과로 한국은 수출 강국, 정보기술(IT) 강국이 됐다. 현재세대는 부모세대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인프라를 누리며 풍요를 누린다. 반면, 부모세대는 여전히 빈곤하다. 연금 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노후를 맞았다.

현재세대는 조세로 그들을 부양한다. 기초연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대표적이다. 이런 사회적 부양은 당위성을 띤다. 부모세대가 희생해 자식세대에 풍요를 물려준 데 대한 보답이다.

현재세대는 미래세대에 물려줄 것이 많지 않다. 한국 경제는 앞으로 과거와 같은 고속 정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겠지만, 기술 발전은 반드시 미래세대의 삶을 윤택하게 하지 않는다. 인공지능(AI) 이후 기술 개발은 일자리를 빼앗고, 신종 범죄를 양산하는 역효과가 크다. 현재세대가 노인이 됐을 때 미래세대에 부양을 요구하는 건 염치의 문제다.

오히려 미래세대의 삶은 현재세대보다 팍팍해질 가능성이 크다. 연금개혁 지연으로 미적립부채가, 포퓰리즘 정치로 국가부채가 쌓였다. 교육현장과 취업시장을 총 없는 전쟁터가 됐다. 2000년대 이후 두 차례 집값 폭등기를 거치며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한 꿈이 돼가고 있다.

미래세대에 조금의 부채의식이라도 있다면 현재세대가 해야 할 일은 미래세대에 사회적 부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수단이 연금개혁이다. 보험료율 인상으로 적립금 소진을 늦추고, 자동조정장치 도입으로 지출 증가를 억제해 적립금이 소진된 이후 가입자들의 부담(부과방식 비용률)을 낮춰줘야 한다. 기초연금 지급범위도 축소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게 자동조정장치 도입이다. 지출 증가가 억제되지 않으면, 적립금 소진 이후 발생하는 수지 적자를 보험료율 인상이나 조세로 충당해야 한다. 해당 시기 취업자들은 많게는 소득의 절반가량을 사회보험료와 세금으로 지출해야 한다.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도 현재세대는 낸 보험료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보장받는다. 그저 초과 수익이 조금 줄어들 뿐이다.

그런데, 최근 연금개혁 논의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른다. 참여연대와 양대 노동조합총연맹,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축인 연금행동은 소득대체율 상향과 자동조정장치 논의 중단을 요구한다. 자신들의 연금액만 높이자는 주장이다. 미래세대에 대한 부채의식, 염치는 보이지 않는다.

연금개혁이 없다는 전제로, 적립금이 소진될 때쯤 내 딸은 30대 중반이 된다. 미래의 내 딸에게 이민을 권하고 싶진 않다. 최소한 미래의 한국도 살만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연금개혁 논의를 시작하길 희망한다. 미래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지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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