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재해 건수, 1980년대 비해 6배 이상 급증
인건비·세금 부담 낮은 남부에 기업들 이전 많아져
허리케인 강타 빈도 늘어나면서 공급망 우려 고조
허리케인 ‘헐린’이 북상한 지 2주일도 안 돼 또 다른 초대형 허리케인 ‘밀턴’ 상륙이 임박하면서 미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가장 위력이 높은 5등급 허리케인으로 분류된 밀턴의 상륙이 임박하면서 미국 정부가 긴장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미국 남부를 강타하며 최소 230명의 사망자를 낸 헐린은 4등급 허리케인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밀턴에 대해 “100년 만에 플로리다를 강타하는 최악의 폭풍 중 하나”라며 해외 순방 일정을 연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0~15일 독일과 앙골라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최근 기후변화로 허리케인 등 악천후 강도와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피해액이 10억 달러(약 1조3440억 원) 이상인 자연재해가 1980년대에는 1년 평균 3.3회 발생했는데, 2019~2023년 들어서는 연평균 20.4회로 6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는 역대 최다인 28회를 기록했다.
NOAA는 올해가 특히 역대급 허리케인 시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 코어로직에 따르면 최근 미국 남동부를 휩쓴 허리케인 헐린 피해액은 최고 47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허리케인은 미국 남부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미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이 높은 인건비와 세금부담을 피하려고 남부로 이전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허리케인이 미국 경제와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지난해 공동 조사한 ‘외국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미국 도시 랭킹’에서 상위 10개 도시 중 8곳이 남부 텍사스주, 플로리다주,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도시였다. 실제로 텍사스주의 경우 1인당 주(州)세와 지방세 평균 부담액이 캘리포니아와 뉴욕주보다 각각 30%, 50% 저렴하다. 여기에 바이든 행정부가 시행한 미국산 전기차에 대한 세제 혜택, 중서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노조 영향력도 글로벌 기업들의 남부 이전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제 허리케인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맞닥뜨리게 됐다. 제너럴모터스(GM)는 헐린 영향으로 3~4일 이틀간 중서부 미시간주와 남부 텍사스주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이에 남부에 집중적으로 포진해있는 부품업체들도 연쇄 타격을 입었다.
반도체 업계도 노스캐롤라이나주 소도시 스프루스파인이 허리케인 헐린 영향으로 침수 피해를 겪으면서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 지역은 반도체 칩의 기반이 되는 실리콘 원반 ‘웨이퍼’를 만드는 데 필수 소재인 고순도 석영의 주요 산지다. 스프루스파인에 있는 석영 공급업체 2개사는 이날까지 생산을 재개하지 못했다. 이들 업체는 “충분한 비축량을 보유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공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생산 중단이 장기화하면 자동차와 스마트폰 등 공급망 전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대통령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허리케인은 선거전 쟁점으로도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