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불어로 번역한 최 씨 "질문할 거리 하나도 없었다"
'특출한 문학적 자질'과 '주제의 보편성'…한강 문학의 힘
"모든 층위에서 거의 연금술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
소설가 한강의 가장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최경란 씨는 "이 작품을 번역하는 과정은 작품 속에 빠져들어 작품이 이끄는 대로 흔들리고 전율하며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과정이었다"며 "아름답고 경이로운 시간이었다"라고 밝혔다.
13일 최 씨는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강의 작품은 개인의 삶의 궤적을 통해 역사 혹은 사회의 문제를 헤쳐 드러낸다. 이러한 엄중한 주제를 펼쳐나갈 때, 그는 지극히 시적인 언어를 구사한다. 깊고 풍부한 동시에 모호성은 배제된 그만의 언어가 독자의 마음에 곧바로 꽂히는 것"이라며 번역 과정에서의 느낀 점을 말했다.
최 씨는 한강의 가장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번역가 피에르 비지유(Pierre Bisiou) 씨와 함께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이 책은 제주 4·3사건을 세 여성의 관점으로 그려내며 폭력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의 흔적과 시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한강은 세 여성의 발걸음을 통해 비극의 역사로 희생된 자들을 애도하고, 남은 자들을 치유하는 방식에 관해 말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난해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한강은 이 책으로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상인 메디치상과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등을 받았다. 여기에 최 씨 등 두 번역가의 공로가 크게 작용했다.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직후 스웨덴 한림원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 가운데 '작별하지 않는다'를 가장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번역과 관련해 최 씨는 "서사가 투명하고 맑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끔 번역 과정에서 작가에게 확인해야 할 부분이 발견되기도 한다. 대개 표현이 모호해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가 있거나, 문맥에서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디테일 등에 관한 것"이라며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질문할 거리가 하나도 없었다"라고 전했다.
최 씨는 한강의 작품이 해외에서 찬사를 받는 이유로 '특출한 문학적 자질'과 '주제의 보편성'을 꼽았다. 정제된 언어를 시적인 문장 속에 구현해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하는 예술성이 한강의 문학적 자질이라는 것이다.
최 씨는 "그의 작품은 한국 역사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인간의 폭력성'은 인류 역사에서 보편적으로 자행됐다. 따지고 보면 산업혁명 이후 서구의 역사야 말로 인간 폭력성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다"라며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맥락은 다르지만 전 세계의 모든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라고 밝혔다.
한강을 포함해 정보라, 박상영 등 최근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해외 유수의 문학상에서 큰 성취를 거두고 있다. 여기에는 분명 '번역의 힘'이 작동하고 있다. 번역은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해외 독자들이 한국 문학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작의 내용과 정서, 그 느낌과 질감 등을 외국 독자들에게 최대한 고스란히 전달하는 일이다. 그것은 단어의 선택이나 일정한 표현 방식의 사용 등과는 무관하다"라며 "번역은 단어, 문장,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 모든 층위에서 거의 연금술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내용과 감동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현지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질문한다는 게 최 씨의 설명이다.
인터뷰 끝에 최 씨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를 꼽았다.
"주인공의 친구 인선이 병상에서 하는 독백인데, 작품을 읽고 난 후의 내 느낌이 바로 그랬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