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경 사회경제부 차장
그동안 예납금이 파산 신청인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쉽게 말해 파산하려고 해도 빈털터리라 신청비를 구하지 못해 파산도 뜻대로 못한다는 것이다.
지급 불능 또는 채무 초과 상태에 있는 법인에게는 법인파산 예납금조차 재정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재정적으로 파탄 난 채무자가 고액에 달하는 예납금을 내지 못해 파산절차 진행이 안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본지는 올 4월 ‘기업이 쓰러진다’라는 제하의 기획 보도를 통해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다.
△[단독] 부산‧광주‧대구 ‘휘청’…지역 뿌리산업 덮친 ‘회생‧파산 도미노’
△“예납비만 억대”…문턱 높은 회생‧파산에 두 번 우는 기업들
해당 취재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법무법인(유한) 지평’ 도산·구조조정팀장을 맡고 있는 권순철 변호사는 취재팀에 “돈이 없어서 회생이나 파산을 하겠다는데, 또 돈을 내야 하니 사실상 제도 이용에 장애가 있다”고 꼬집었다.
권 변호사는 “회생이나 파산을 고민하는 기업에게 가장 큰 문턱은 비용”이라면서 “부채나 자산 규모에 따라 법인회생 신청에 드는 돈을 예납해야 하는데, 적으면 몇 천만 원부터 많으면 억대까지 나올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무준칙 개정 전 법원은 파산 신청을 한 법인의 부채총액을 5억 원 미만부터 100억 원 미만까지 5개 구간으로 나눠 최소 500만 원에서 최고 1500만 원에 이르는 예납금을 납부하도록 했다. 그러나 개정 후엔 5개 구간 구분을 없애 부채총액 100억 원 미만 법인 전체에서 500만 원만 받기로 했다. 예납금을 최소한도까지 축소하면서 최대 3분의 1 수준으로 과감하게 낮췄다.
기존 부채총액 최고 구간인 100억 원 이상인 법인의 경우도 개정 전에는 ‘2000만 원 이상’으로 예납금에 상한을 두지 않았으나 개정 이후 ‘1000만 원’으로 고정시켰다. 예납금 부담을 절반 넘게 대폭 완화 조치했다.
본지가 문제 제기를 한지 여섯 달 만에 법원은 관련 제도를 신속히 손질했다. 불통의 시대, 언론을 경청하고 전문가들 의견을 귀담아 듣는 법원의 소통하는 자세에 박수를 보낸다.
권 변호사는 이번 ‘서울회생법원 실무준칙’ 개정에 대해 “실질적인 예납금 부담이 경감됨에 따라 법인파산 절차가 보다 활성화되고, 파산절차 역시 신속히 진행될 것”이라며 “예납금 납부가 지연될 경우 전체 파산 절차도 연장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예납금 납부 기준이 완화됨에 따라 이러한 절차 지연 또한 감소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회생법원 확대 설치가 필요하다’는 본지 연속 기획 보도가 있었지만 법원 조직 개편과 연결되는 사안이어서 국회 협조가 필수다. 하지만 정쟁에 빠진 국회로 인해 관련법이 언제 통과될지는 ‘불확실한 대내외 경제 환경보다 더 불확실한’ 상황이다.
그러는 사이 티몬‧위메프 미정산 대란이 터졌다. 수많은 소상공인들 피해가 현실화했음에도 여‧야는 말로만 민생을 외칠 뿐이다.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적기에 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회생법원 확대가 시급하다는 지적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