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자책 시장을 달구고 있는 애플의 휴대형 다기능 단말기 ‘아이패드’가 이달말 일본에 상륙, 일본 정부와 출판업계가 치열한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구로후네’는 1853년 매슈 페리 미국 해군제독이 에도막부를 강제 개국시키기 위해 4척의 군함을 끌고 에도 앞바다에 나타난 이른바 ‘검은 증기선’ 사건을 말한다. 블룸버그통신은 9일 아이패드의 일본 상륙을 이같이 비유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이패드는 독서에 적절한 화면색상과 큰 화면이 강점으로 미국에서는 출시 첫날인 지난 3일 구입자 30만명 대부분이 전자책을 다운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출판업계는 이처럼 막대한 수요를 빨아들이는 아이패드가 출판업계의 전통을 뒤흔드는 ‘구로후네’가 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가운데 정부까지 방패막이를 자청하고 나섰다.
일본 정부의 총무성ㆍ경제산업성ㆍ문부과학성 등 3개 성은 지난달 17일 출판ㆍ전기ㆍ통신 분야 관계자 및 작가로 구성된 간담회를 설립하고 6월까지 전자출판물에 대한 대응방침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나이토 마사미쓰 총무성 부대신은 “수수방관하고 있으면 킨들ㆍ아이패드의 독과점을 허용하는 바나 다름없다”며 위기감을 표명했다. 하라구치 가즈히로 총무상도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2개 단말기에 대해 ‘구로후네’라고 일축했다.
일본 대형 출판사인 고단샤와 쇼갓칸 등 31개 출판사는 지난달 24일 전자책의 일본 상륙에 대처하기 위한 창구로 사단법인 일본전자서적출판사협회를 설립했다.
일본 정부와 출판업계가 특별히 위기의식을 갖는 것은 일본 특유의 출판유통과 이익배분 제도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중고서적을 제외하고 문화 보호차원에서 책 가격이 정찰제로 유지되고 있다. 서점은 팔다 남은 책을 일본출판판매와 도한이라는 중개업자에게 손해를 보지 않고 반품할 수 있다.
저자의 몫인 인세는 출판사와의 협상을 통해 변동이 가능하며 인기작가의 경우는 발행 부수에다 정가의 10% 정도를 곱해 정해진다.
그러나 PC나 휴대전화용으로 배급하고 있는 전자책 판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는 것이 맹점이다.
임프레스R&D의 다카키 도시히로 연구원은 “일본 출판업계는 정부의 보호 하에 구두계약을 기본으로 해온 만큼 계약사회인 미국 규정과의 차이로 불안해하고 있다”며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들어 오면서 당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전자책 시장은 만화와 휴대폰 소설등의 인기에 힘입어 미국 시장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시장조사업체 임프레스R&D에 따르면 2008년도 일본 전자출판 시장 규모는 464억엔(약 5560억원), 그 중 휴대형 전자출판 시장 규모가 402억엔이었다.
미국의 전자출판 시장은 2009년에 아마존닷컴의 ‘킨들’ 출시로 전년 수준을 3배 웃돌았지만 일본시장보다 작은 291억엔(약 3억1320만달러)에 그쳤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런 가운데 아이패드의 공습은 전멸상태나 다름없는 일본 전자출판 시장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전자책 시장에서는 소니와 파나소닉이 앞서 출시했지만 반응이 저조해 2008년에 모두 철수한 상황이다.
소니와 파나소닉의 대변인은 “일본 소비자들은 휴대전화를 통한 인터넷 접속에 익숙해 독서가 가능한 단말기에 별다른 흥미를 갖지 않는다”고 말해 일본 시장의 반응에 주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