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 빠진 日경제 어디로
위안화 절상 요구에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기 싸움이 각국의 환율전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일본이 전장의 핵심에 놓여있어 주목된다.
일본은 지난달 15일 엔화가 달러당 15년래 최고치까지 급등하자 이에 따른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 6년 6개월 만에 환율 개입을 단행해 주요국들의 눈총을 받았다.
그 동안은 자국 통화 약세로 경기를 부양하려는 미국과 유럽의 눈치를 보느라 속앓이를 했지만 안팎에서 들려오는 기업들의 비명 소리에 결국 환율전쟁에 발을 담근 것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이번 환율전쟁을 본격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엄밀히 따지면 미국과 중국이 환율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일본이 직접적인 환율 개입을 단행하면서 역풍을 맞은 셈이 된다.
미국은 그 동안 위안화가 과도하게 평가절하돼 있다며 환율조작국이라는 카드로 중국에 위안화 절상 압력을 가했다.
급기야 미국 하원은 중국을 겨냥해 환율 조작이 의심되는 국가들의 수입품에 상무부가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개혁 법안’, 이른바 ‘위안화 압박 법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켜 중국과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중국은 “미국 의회 일각에서 위안화 문제를 이용, 미·중간 무역 불균형을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고 발끈, 오히려 센카쿠 열도에서 발생한 일본 순시선과 중국 어선 충돌 사태를 빌미로 희토류 수출 규제에 나섰다.
희토류는 전기자동차나 첨단 전자기기의 핵심 부품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희귀금속으로 전세계 생산량의 90% 이상을 중국이 생산하고 있다.
전기차 등에서 선구적인 입지를 다지고 있는 일본 기업들에 비상이 걸린 것은 물론이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미국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가 자국의 국가 방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긴급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밀유도폭탄 핀의 경우 모터에 희토류의 일종인 사마륨코발트 영구자석이, F22 등 고성능 전투기의 방향타나 수직안정판을 움직이는 모터에도 소량의 희토류가 사용된다.
결국 최근 환율전쟁의 시발점은 미국과 중국의 기 싸움에서 비롯됐으며, 이것이 엔화 강세를 부채질해 일본의 숨통을 계속 조여오고 있는 셈이다.
투자은행 크레이그 드릴 캐피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이자 뉴욕대학에서 금융학을 강의하는 앨버트 워즈니로어 교수는 “중국이 외환보유고를 달러에서 엔화 등의 통화로 다각화한 것이 엔고의 주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다우존스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중국의 엔 매수는 53억달러(약 5조9300억원)에 달한다. 중국은 올해 들어 국채 등 엔화기준 금융자산을 200억달러어치나 매입했다.
이는 지난 5년간 중국이 매입한 엔화기준 자산 합계의 5배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다만 월스트리트에서는 엔고 문제의 본질은 일본의 통화정책에 있다는 견해가 강하다.
중국의 존재가 엔고를 부채질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통화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한 나라의 환율정책만으로 장기간 이 정도의 엔고가 계속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은 이번 주 워싱턴에서 열리는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각국의 환율개입에 자제를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 재무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의 균형을 위해 미국은 각국이 시장원리에 근거한 환율을 용인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환율정책이 세계 무역 투자에 불균형을 증폭시킨다는 이유로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