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이념과 남녀, 계층과 세대, 노사, 지역 등 각종 갈등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올해는 총선과 대선 등 정권교체기를 맞이해 이러한 갈등의 정도는 정점에 달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노사관계는 복수노조의 시행으로 노사 갈등을 넘어서서 노노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젊은이들은 한국 성장을 이끌어낸 기성세대를 ‘구식’으로 치부하고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버릇없음을 꾸짖는다.
온갖 갈등을 양산하며 이에 또 다시 잠식되는 악순환에 빠져든 대한민국에서 각계 각층의 양 극단에 위치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계층갈등
박병원(은행연합회 회장·61·남) = 은행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돈벌이 수단으로만 되는 부분은 문제가 있다. 지난달 취임사에서 ‘은행들과 종사자들이 단기적인 이익 극대화에만 집착해선 안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은행 산업에 대한 사회 전체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이 발언과 관련 은행의 공공성 훼손 책임을 종사자에게 돌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취임사에서 말한 종사자는 은행원도 포함하지만 노동자 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취지로 말한 것도 아니다. 은행연합회장이 되면 은행의 공통 이익을 위해서만 일하는 줄 알았다. 근데 협상 파트너가 금융노조라 깜짝 놀랐다. 앞으로 노조와도 소통을 잘해 나갈 생각이다. 은행의 사회적 책임 강화와 사회적 역활을 회복해야 한다는 부분에서도 노조와 의견을 같이 했다. 앞으로 금융기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노사가 같이 찾아보고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은 힘을 합치겠다.
홍세화(진보신당 대표·65·남) = 한국사회의 1%들은 늘 이렇게 말해왔다. 가난한 99%들이 경제적 곤궁을 벗어나려면 우선 나라 경제의 ‘파이’가 더 커져야 한다고 말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포함해 금융자본주의 질서가 근본적인 위기를 맞이한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파이가 커진다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몇몇 대자본이 키운 파이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빈핍한 이들에게 정신적 박탈감만 안겨주는 쇼윈도 속 전시물 외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할 것이다.
1%와 99% 사이의 간극이 갈수록 벌어지는 현실의 바탕에는 소수의 재벌기업이 자본주의적 합리성에도 위배되는 이윤추구 방식이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채 허용돼 왔다는 사실이다. 갈등의 극복은 이렇게 사유화된 국가 경제의 운용방식에 사회적 공공성을 적용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기업갈등
박성식(민주노총 대변인·40·남) = 지난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는 어용노조의 출현과 육성을 부추기는 제도로서 노노갈등을 유발하는 측면이 매우 크다. 올해도 이러한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창구단일화라는 복수노조 교섭구조 상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해 조합원을 늘리는 방식보다는 노조 조직률을 높이지 않는 동시에 교섭권을 독점하는 유력한 방식인 상대 노조 조합원 빼오기를 어용노조는 선호하고 있다. 이는 노노갈등의 커다란 요인이며 올해도 어용노조의 이러한 행태는 더욱 기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률을 확대하고 더불어 노동기본권을 확장한다는 복수노조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복수노조 입법의 독소조항인 교섭창구단일화를 폐기해야 한다.
남용우(경총 노사대책본부장·44·남) = 그동안 우리 노사관계는 투쟁, 대립, 갈등과 같은 오명(汚名)을 들어왔다. 일반 조합원들의 총의(總意)보다는 일부 강경파, 집행부의 입장이 마치 전체 의사인 것처럼 왜곡되고 조합원 의사를 무시한 채, 정치투쟁에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기존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에 대한 건전한 견제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복수노조 시행으로 건전한 견제세력의 출현을 위한 제도적 환경이 조성됐다.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이상 노조 간 양보와 타협, 소통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노조는 아직까지 공존을 모색하거나 합리적 노동운동을 통해 지지를 받으려하기 보다는 제로섬게임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내년도 노사관계를 둘러싼 여러 가지 불안요인이 잠복해 있기 때문에 충분히 복수노조로 인해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민관갈등
장진호(광주과학기술원 교수·44·남) = 갈등 고조와 소통 부재의 문재는 (정부가) 들으려하지 않은 것에 있다. 억압하고 봉쇄하려는 모습은 현 정부 와서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그런 면에서 퇴보라고까지 할 수 있다. 20년전까지 돌아갔다. SNS 규제도 그렇고 미네르바 구속도 그렇고 자유로운 의사표현에 있어서 위기가 왔다. 가장 큰 것은 정부 여당이 선거자체를 조작하려 했다는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정권교체를 하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과거정권에 대한 심판과 수순으로 현정권 수임자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는 것이다.
정부가 이데올리기적,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기계적 중립성이라는 것은 중립적이면서 중립적이지 않은 것이다. 정확히는 중립성이라기보다는 민주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돈(한나라당 비대위원, 중앙대 교수·62·남) =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다. 그것이 정상이든 아니든. 법질서와 민주적인 장치가 가동이 잘 돼야 한다. 안되는 나라는 갈등이 깊어지고 확대되는 것이다. 법이나 사법적인 절차, 국민의 신뢰나 다수의 수긍을 얻지 못하면 불신이 생긴다. 민주적인 법절차가 고장난 사회가 갈등이 생긴다.
정치인들이 그때 그때 올바른 법을 만들고 틀린 것은 여론에서 바로잡는 언론의 역할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장치를 갖추고 있었으나 현재는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신뢰를 잃어버리면서 권위가 없어졌다. 정부가 잃은 신뢰를 회복하려면 공정하다는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정부가 공정해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다.
유시주(희망제작소 소장·52·여) = 기본적으로 정부가 갈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의 책임이 있는 일인데 갈등을 관리하는 역량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느낀다. 갈등이 첨예하게 터져나올 때는 주요 사업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갈등이 빚어진다. 예를 들어 핵폐기물 저장소를 짓는다고 할 때 시민들의 얘기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진심으로 듣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공청회를 열면 거기서 나온 얘기를 백지상태에서 다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미 정답을 정해놓고 요식행위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시민들도 물론 의견을 제시할 때 성숙해 져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공기관이 책임이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진심으로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여서 실제로 열린마음으로 얘기를 들어야 한다.
◇세대갈등
심인섭(어버이연합 회장·77·남) = 좌파를 척결해야만 대한민국이 평탄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용공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상태다. 사회의 안전을 해치고 있어 사회 통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세력이 전교조, 민주노총, 민주통합당이다. 이들 세력은 공산주의의 탈을 쓴 빨갱이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적대관계인데 북한에 쌀 등을 원조하고 퍼주기식 정책을 펼치는 것은 이적행위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때 너무 많이 퍼주니까 북한이 핵도 만들도 천안함 사건도 생겨난 것이다. 40대까지는 좌파성향을 가지고 있어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우상화하는 것이 심히 걱정된다. 6.25를 겪은 세대로서 남북 통일을 정말 원하고 있다. 하지만 남북은 대치 상태로 대한민국이 잡아먹히느냐 살아남느냐의 문제이기에 대한민국에 불리한 좌파는 척결돼야 한다.
박희정(직장인·27·여) = 대한민국의 갈등 중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정치적인 반목이 심각하다. 그 증거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의 세대간 표 간극이 심회돤 것이다. 생활은 계속 빡빡해지고 직장에 들어와서도 안정적이지 못하다. 고민의 끝이 없는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다. 민생안정을 외치는 기성 정치인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젊은 세대가 오프라인에서 정치적인 성향을 보이기 쉽지 않다. 정치적인 성향이 다른 것으로 인한 선입견과 정치 성향이라는 것은 남들에 의해 쉽게 바뀔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회사 조직 생활에서는 공유하기 어렵다. 정치적인 성향을 이유로 인사, 생활에서 등 여러 불이익들을 감수해야 한다는 두려움은 젊은 세대를 SNS와 ‘나는 꼼수다’에 빠지게 하고 있다. 기성 세대의 정치에 신뢰를 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은 사실 갈등의 현장에 직접 들어갈 용기가 없다. SNS와 나는 꼼수다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