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성 국제경제부장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중국 경제와 정치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물었다.
그는 “경제는 성장할 것”이라면서 “정치에 대해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아마도 앞으로 10여년은 상당한 혼란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는 일각에서 중국이 구소련과 같은 분열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던 때였다.
그는 “구소련과 같은 혼란을 의미하는가”라고 묻자 비보도를 전제로 했음에도 “노 코멘트”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같은 해 역시 홍콩에서 만난 선흥카이증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내놨다.
그는 “중국 경제의 부침은 있겠지만 장기적인 성장에 대한 불안은 없다”면서 “그러나 정치라면 상황은 다르다”고 했다.
아시아 최대 공산국가로써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있는 중국의 정치는 섣불리 예상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중국은 방대한 영토에 과거 경험하지 않았던 자본주의를 접목하고 있다.
중앙집권을 추구하는 중국의 정치 향방을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은 23개의 성과 5 자치구, 4 직할시와 2개의 특별행정구로 구성된다.
중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티베트는 5개 자치구 중 하나다.
중국의 정계 실력자 중 온건한 이미지로 알려진 장춘셴 당서기가 테러분자에게는 선정을 베풀 수 없다며 선전포고를 한 신장위구르 역시 주요 자치구다.
중국의 ‘핵’으로 불리는 신장위구르에서는 지난달에만 폭동으로 12명이 사망했다.
이번 달에는 공안 당국이 폭탄 제조 용의자 4명을 사살하는 등 신장위구르의 위기감은 날로 확산하고 있다.
중국은 자치구를 정한 것이 소수민족의 자치권과 문화 및 전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실상은 소수민족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사실 소수민족의 갈등은 중국을 둘러싼 표면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중국의 진정한 뇌관은 정치다.
중국의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이제 고위 정책당국자의 입에서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그것도 나라의 최대 정치행사에서 말이다.
최근 보시라이 사태는 심상치 않다.
이를 단순히 미래권력 시진핑 시대를 앞둔 정치싸움으로 치부하기에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서양의 일부 유력 언론은 보시라이의 낙마를 지난 20여년 동안 중국 정계에서 목격한 가장 큰 ‘균열’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적으로 중립노선이라는 원자바오 총리의 정치 개혁 발언은 문화대혁명을 경고하는 수준까지 수위가 올라갔다.
미국을 위협하며 G2로 올라선 중국이 무난한 정권 인수를 이루지 못할 경우 대대적인 정치적 혼란을 피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올해말 미국과 중국이 모두 정권 교체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단순히 우연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공화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안갯속을 헤매고는 있다지만 민주주의 시스템이 자리를 잡은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정국 혼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상황이 다르다.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오른 뒤 정권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그동안 억눌렸던 문제들이 봇물처럼 쏟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까스로 글로벌 경제가 회복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정치 불안은 소용돌이가 될 수 있다.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중국이 기침하면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 경제가 독감에 걸린다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을 걱정하는 것보다 정치 개혁이 순조롭게 이뤄질지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이 과거 구소련 같은 체제 붕괴로 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시라이 사태를 보도하며 중국의 정치 상황을 로마 시대 율리우스 카이사르 살해에 비할 정도로 잔혹하다고 평가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앞으로 중국 정계에는 보시라이 사태를 넘어서는 권력투쟁 쓰나미가 올 수 있다.
중국 권력자의 교체는 우리에게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6자회담은 물론 탈북자 문제와 해상영역 갈등 등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만 수두룩하다.
하루 빨리 중국의 정세 변화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짜고 로드맵을 구축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