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경마공원 10경주(1800m)에 총 12마리의 경주마 중 한 마리로 출전한 ‘밸리브리’는 경주에서 세 번 째로 무거운 부담중량(55kg)을 지고도, 당당하게 9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한 때는 경주로를 압도하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뒷심을 자랑했지만,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작년부터 급격한 경기력 저하와 젊은 경주마와의 몸싸움에 힘들어 하는 모습에 마침내 화려한 경주마 인생을 접고 은퇴를 하게 된 것.
소속조 홍대유 조교사는 경기 직후가진 인터뷰에서 “밸리브리는 고령임에도 운동기 질환이 없고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승부근성이 살아있어 마음만 먹으면 경주에 계속 출전할 수 있지만, 어린 경주마와 함께 강도 높은 새벽훈련을 견뎌 내야하는 밸리브리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주저 없이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밸리브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과천벌 최고의 마필로 2006년에 이어 2년 연속 연도 대표마에 오른 사실이 이를 대변한다. 특히, 2007년 국산마와 외산마를 통틀어 최고의 경주마를 가리는 제26회 그랑프리(GI)에서 최대의 라이벌인 ‘섭서디’와 대통령배 우승마 ‘명문가문’을 제치고 당당히 우승해 최강의 경주마에 올랐다. ‘밸리브리’는 현역 최고령 경주마에, 수득상금도 12억 3천만 원을 벌어들여 역대 경주마 수득상금 랭킹 중 4위를 기록 중이다. 통산전적 53전 19승 2위 13회 승률 : 35.8 % 복승률 : 60.4 %의 성적은 꾸준함이 받쳐주지 못하면 이루지 못할 기록이었다.
밸리브리가 정작 스타덤에 오른 것은 지난해.
현역 후반기의 밸리브리의 성적은 초라했다. 전성기의 명성은 퇴색했고, 매번 경주에서 거의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냈다. 그랑프리 대상경주 우승도 차지하며 한국 최고의 경주마라는 찬사를 받았던 영광은 돌이킬 수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세간의 무관심에 반항이라도 하듯, ‘밸리브리’는 지난해 3월 주몽 등 정상급 외산마들이 출전한 1800m 핸디캡 경주에서 출전마중 가장 무거운 부담중량(56Kg)을 지고도, 당당하게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물론 과거처럼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노장의 투혼이 빚어낸 눈물겨운 승리에 팬들도 환호했다.
사실 ‘밸리브리’는 홍대유 조교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마(老馬)는 경주로는 떠나지만, 영원히 경주마로 남을 예정이다.
홍대유 조교사(48세)는 무엇이 ‘밸리브리’에게 가장 좋은 일인지 심사숙고해서 판단했다고 한다.
“밸리브리는 거세마라서 씨수말로 데뷔할 수도 없고 또 은퇴를 해도 경주마의 본능이 워낙 강해서 승용마로 활용하기도 어렵습니다. 밸리브리는 경주마로서 달릴 때가 가장 행복할 겁니다”라며 “‘밸리브리’는 20일 마방식구들만 참석한 조촐한 은퇴식을 치르고 기수 엘리트 코스인 한국마사고등학교에 기증, 예비 기수들과 훈련을 하며 노후를 보내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달린 경주, 한때 경주로를 호령했던 백전노장 ‘밸리브리’에게 12마리 중 9위 기록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결승선까지 최선을 다해 질주하는 노마(老馬)에게는 10여년의 세월을 정리하기에 짧은 거리였다. 화려한 전성기는 어느덧 쏜살처럼 지나갔지만, 늙은 경주마와 그 말이 전부였던 중년의 조교사의 표정에서는 만감이 교차해 보였다.
-밸리브리 통산전적 : 통산전적 53전 19승 2위 13회 승률 : 35.8 % 복승률 : 60.4
-수득상금 : 1,232,05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