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 재원대책 보고 분수령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난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박 당선인이 “공약 수정론은 시기상조”라고 쐐기를 박음에 따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선 재원 마련에 전력해야할 처지이지만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새누리당이 추산한 복지공약 재원이 과소 계상됐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상황이다.
기획재정부가 이르면 이번주 중 인수위에 재원마련 대책을 보고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대선공약 이행을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일각에서는 공약 속도조절이나 수정, 나아가 증세 등을 본격 거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 당선인측 일부 인사들은 복지나 경제민주화의 정신이 두드러진 공약에 반감을 갖고 있던 관료사회나 보수·기득권층의 반발이 이런 식으로 서서히 가시화하는 것이 아닌가 주목하며 대응방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공약 재원 과소계상 논란=박 당선인 대선공약과 관련한 일련의 ‘재원 과소계상’ 논란은 연금·의료 분야가 시발점이다.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으로 전환해 수령액을 2배로 늘리고 대상자를 확대하겠다는 공약과 4대 중증질환 무상진료 공약이 먼저 도마 위에 올랐다.
보건복지부와 보건사회연구원을 중심으로 이들 공약을 이행하려면 새누리당이 애초 제시한 추가 재원(5년간 28조3천억원)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보사연은 실제 소요 재원은 사안에 따라 2~3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새누리당의 재원 계산이 그만큼 엉성했다는 뜻이다.
재원 논란은 다른 복지공약까지 전방위로 확산할 태세다.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출구전략’과 ‘우선순위 조정’이 거론될 정도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6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새누리당의 총선공약을 이행하는 데만 5년간 270조원이 더 든다고 밝혔다.
당시 총선공약에는 기초연금이나 4대 중증질환 등의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 재원이 투입돼야 한다고 추산한 것이다.
보고서는 “인기영합적 복지공약은 통제 가능한 국가채무, 안정적인 조세부담, 지속적 경제성장이라는 정책목표 달성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원 과소계상 논란은 쟁정부가 지난해 4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만든 ‘복지 태스크포스(TF)’에서도 예고됐다.
당시 재정부는 TF 회의 보도자료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제시한 재원조달 방안이 그대로 실현되는 데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박빙의 판세 속에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복지공약은 더 규모가 커졌고, 필요 재원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새누리당은 대선공약에 기초노령연금 수령액 2배 확대, 기초생활보장 수혜자 부양의무자 소득인정액 기준 상향 등 민주당의 총선공약을 상당수 끌어왔다.
저소득층 분유·기저귀 12개월 지원, 셋째아이 대학등록금 전액 지원, 모든 중·고교 스포츠강사 배치, 학자금 대출이자 탕감, 비정규직 200만명 고용·연금보험료 정부 지원 등도 대거 추가했다.
재정부는 이들 공약을 이행하는 데 추가될 재원이 얼마인지 분석하고 있다. 아무리 따져도 새누리당이 제시한 131조원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은 게 사실이다.
◇공약수정·증세 논쟁으로 이어질 수도=재정부가 재원 과소계상을 인정하면 논란의 중심은 공약 수정과 증세로 옮겨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 당선인은 지난 18일 “대선 때 공약한 것을 지금 와서 된다, 안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공약 수정론에 일단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다만, 공약 수정에 완전히 가능성을 닫아 놓은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인수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박 당선인이 공약의 ‘수정 불가’가 아닌 ‘시기상조’라는 표현을 쓰며 “그런 것(공약 수정)은 새 정부가 출범한 뒤에 할 일”이라고 언급한 대목에서 엿볼 수 있다는것이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공약 수정론에 대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지난 18일 기자단 환담회에서 “(수정) 가능성이 있다거나 없다고 얘기한 적은 없다”고 설명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힐 수 있다.
한편에선 공약 수정을 인수위 단계에서 착수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복지재원 마련에 불경기 대응 수단인 국채 발행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있다.
한희원 동국대 교수는 20일 “현실에 맞지 않거나 잘못된 공약은 솔직히 인정해야 부담이 적다”며 “공약 수정을 정부 출범 이후로 미루는 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적자 국채 발행 증가를 우려하면서 새 정부 공약 이행의 속도와 우선순위 조정을 주문했다.
그러나 박 당선인측에서는 일각의 공약 수정론에 밀려서는 복지확대라는 핵심공약의 실현이 저지되고 ‘박근혜=신뢰’의 등식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공약 이행에 전력투구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다. 경우에 따라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인수위는 거듭 ‘증세는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예상보다 소요 재원이 많아질 경우 재원 조달 방식에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대야 하기 때문이다.
인수위가 하지 않겠다는 증세의 정확한 개념과 방식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견해가 갈린다.
홍익대 김유찬 교수는 “비과세감면 축소는 오래전부터 검토됐지만, 실행은 쉽지않다”며 “합리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세율을 올리는 증세”라고 강조했다.
고려대 이만우 교수는 “각종 비과세감면을 줄이고 최저한세를 올리는 게 이미 증세를 하는 것”이라며 “세율은 이미 올릴 만큼 올렸다”고 반대 논리를 폈다.
인하대 강병구 교수는 “복지재원을 늘리는 데 맞춰 세제도 개편해야 한다”며 소득세 최고세율을 높이고 최고세율 적용 구간을 늘리는 ‘부자 증세’를 주장했다.
어쨌든 인수위가 증세를 거론하면 복지재원을 위한 직접 증세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집는 모양새가 되는 데다 조세 저항이 뒤따라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