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의 혼맥은 정치권에서 시작한다. 창업주 김준기(70) 회장의 집안은 2대째 국회의원을 배출한 명문 정치가(家)이다.
정치가문에서 시작한 혼맥은 김 회장을 기점으로 재계로 보폭을 넓혔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다시 정계에 진출하며 영역을 확대하기도 했다. 혼맥의 뿌리가 정계에서 시작한 만큼 재벌가와 정치권 사이에 탄탄한 혼맥을 이었고, 관가와 학계로도 연을 넓혔다.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에서 시작한 정계혼맥 = 동부그룹 창업주 김준기 회장의 부친은 고(故)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이다.
김 전 부의장은 1954년 제3대 민의원을 시작으로 내리 7선 국회의원을 지낸 거물급 정치인이다. 국회 상공위원장, 공화당 원내총무, 국회부의장을 두루 지내는 등 활발한 의정 활동으로 이름을 알려왔다. 2006년 별세할 때까지 정계 원로를 대표하며 대한민국 정치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김 부의장은 부인인 고(故) 김숙자 여사와의 사이에 김준기 회장을 포함 8남매를 뒀다.
김준기 회장은 정계 입문을 원했던 부친의 의지와 달리 창업에 나서며 재계로 진출한다. 김 부의장은 1972년 항명파동으로 권력에서 밀려났다. 이 때문에 장남인 김 회장이 기업경영에 나서는 것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못다 한 꿈을 김 회장이 이뤄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정치를 등지고 기업경영에 나선 김 회장은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창업주다. 시작은 자본금 2500만원. 신분은 대학생이었고 직원은 고작 3명이었다.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시절 시작한 ‘미륭건설’을 초석으로 현재의 동부그룹을 만들었다. 스스로 오늘의 자리를 일궈낸 재계 총수의 대표적 인물인 셈이다.
그룹의 밑거름이 된 미륭건설은 1970년대 중동건설 경기 붐을 타고 성장했다. 건설업계 도급순위 10위권에 단박에 진입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건설을 바탕으로 보험과 전자, 제철로 그룹은 점진적인 확장을 거듭했다.
혼맥은 김준기 회장을 통해 주목받고 있지만, 시작은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에서 비롯된다. 자녀들의 혼인이 정계와 관가, 법조계, 학계 등으로 폭넓게 이어지면서 다양한 혼맥을 일궈냈다.
◇재계에서 다시 정계와 학계로 혼맥 이어 = 김진만 전 부의장은 부인 김숙자 여사와의 사이에 5남3녀를 뒀다. 장녀인 명자씨는 국내 최초의 치약회사인 동아특산약화학 임형복 회장의 차남 임주웅 전 동부생명 사장과 결혼했다. 둘째이자 장남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의 처가는 삼양사로, 부인 김정희씨가 삼양사그룹 창업주 고(故) 김연수 선생의 장남 김상준 삼양염업 회장의 둘째딸이다. 김상준 회장의 장남, 즉 김정희씨의 오빠가 김병휘 한양대 수학과 교수다. 김준기 회장과 중·고등학교 동기 동창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희씨의 조부인 김연수 선생은 고려대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의 동생이다.
훗날 인촌 선생의 후계자로 지목된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는 자신의 딸을 김준기 회장의 동생인 김택기 전 열린우리당 의원과 혼인시킨다.
김준기 회장은 부인 김정희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뒀다. 장녀인 주원씨는 리젠트화재(옛 해동화재) 김동만 회장 손자인 주한씨와 결혼했다. 주한씨는 메릴린치 증권의 미국 애틀랜타 지점에서 자산운용사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원씨는 동부화재 최대주주로 한때 재계의 여성 대주주 1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장남인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은 차경섭 차병원 이사장의 손녀 원영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유학시절, 누나인 주원씨의 소개로 결혼했다.
자수성가한 김준기 회장은 형제자매 등 가족을 그룹 경영에 불러모으는 일이 적었다. 오너 일가 가운데 고(故) 김형배 전 동부문화재단 이사장, 동서인 윤대근 동부건설 부회장 정도가 그룹에 몸을 담았었다. 김형배 전 이사장은 김 회장의 외삼촌으로 상공부 상역국장, 공업진흥청장 등 관가에 이름을 남겼던 인물이다
김준기 회장의 손아래 동생인 김명희씨는 시민활동가다. 한국여성의전화 창립멤버로 정치권의 여성 국회의원들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명희씨가 변호사 김평우씨와 결혼하면서 동부의 혼맥은 법조계로 확대된다.
김준기 회장과 고교 동기인 김평우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법조계에서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등신불’의 저자인 고(故) 김동리 선생의 아들이기도 하다.
김택기 전 의원의 부인은 이양희 성균관대 법학대학원 교수다. 앞서 언급한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의 딸이다. 이철승 전 총재는 7번의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국회부의장과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했다.
이양희 교수 역시 부친이 걸었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당선인의 대권가도를 뒷받침할 측근 인사로 주목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당선인은 2011년 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때 비대위원으로 이 교수를 영입했다. 이양희 교수 역시 이때 비대위원으로 활동하며 ‘박근혜 사람’으로 합류한 사례다.
인력 풀을 쉽게 바꾸지 않는 박 당선인의 인사스타일을 감안할 때 이 교수가 본선무대에서도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3남은 김무기 전 동부증권 부사장이다. 그는 이종진 전 서울대 문리대학장의 딸인 지은씨와 결혼하며 혼맥을 학계로 이었다. 부인인 지은씨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4남 흥기씨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교사인 오남선씨와 연애결혼했다. 현재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흥기씨의 결혼은 막내 여동생 희선씨가 중매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진만 전 부의장의 막내딸인 희선씨는 맏언니인 이명자 여사와 함께 재벌가로 시집을 갔다. 농심그룹 신춘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이 그의 남편이다. 신동윤 부회장의 아버지인 신춘호 회장은 자녀들을 모
5남인 형기씨의 혼사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김준기 회장 집안의 혼맥은 정계에서 시작했지만 재계로 확대되면서 넓은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수성가형 창업주로 손꼽히는 김준기 회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