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잣집에서 배운다]유사참연(有事斬然), 잘못 시인할 줄 아는 용기

입력 2013-02-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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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세운 김용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 이어 정홍원 전 법률구조공단 이사장도 자녀의 병역문제와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다.

역대 정부에서도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병역문제나 부동산투기 의혹은 거의 예외없는 의혹 거리가 됐다. 고위공직자나 재벌가 자녀의 병역 면제율이 일반인보다 월등히 높은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시각이다.

그러나 인사청문회에 나선 국무총리나 장관 후보자들이 과거 잘못된 점을 솔직히 시인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관계에서 ‘일이 닥치면 무조건 부인하라’는 금언이 퍼져 있는 상황이라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국민 앞에 사회지도층으로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 왕자가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한 것이나, 손자인 해리 왕자의 아프가니스탄 최전선 군 복무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용기 있게 전쟁에 참여하는 모습은 박수칠 만하다.

우리사회의 지도층이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분명히 용기 있는 결단이겠지만, 과거 잘못을 시인하는 모습도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런 점에서 경주 최부잣집의 몸을 닦는 수신(修身)의 가훈 ‘육연(六然)’ 중 ‘유사참연(有事斬然)’의 정신이 필요하다. 유사참연은 일을 당하거나 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하라는 말이다.

최부잣집 1대조인 정무공 최진립이 병자호란 때 노구의 몸을 이끌고 전쟁에 참여해 전사했던 일이나 3대조 최국선의 명화적(明火賊) 침범 이후 각성한 점, 동학혁명 때 11대조인 최현식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던 행동은 유사참연의 정신을 잘 나타낸다.

최진립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포위되자 충청감사 정세균의 만류를 뿌리치고 69세의 노구에도 백의종군하며 의병을 모아 인조를 구하러 출전했다. 당시 감사 정세균은 연로한 ‘최진립이 전장에 나서 싸울 연령이 아니다’라며 공주영장의 직위에서 해임했다. 하지만 최진립은 “내가 늙어서 장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지만 능히 갈 수는 있다”며 “근력은 비록 쇠하였으나 뜻은 가죽에 싸여 짐에 있다”며 출전을 감행했다.

최진립은 옥동(종)과 수하를 데리고 경기도 용인 험천에서 청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중과부적으로 전사했다. 최진립의 용기에 감동한 인조는 엄중하게 정무공의 장례식을 거행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최부잣집 만석 부자의 기틀을 만든 최국선은 도적떼인 ‘명화적’의 침입을 받았는데, 도적떼 무리 속에 소작농과 그 아들들, 종들도 포함된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최국선은 깊이 반성하고, 그동안 자신이 관행처럼 해왔던 고금리 이자를 버리고 병작반수제(수확의 절반을 나눠주는 제도) 시행과 말년에는 채무자들의 빚을 모두 탕감해줬다.

11대조인 최현식은 고종 때 진사시에 합격해 경릉 참봉직을 수행하다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을 이어갔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듬해에 동학혁명이 일어났다. 경주지방에서는 구물천이라는 활빈단 두목이 농민들을 모아 양반들을 대상으로 집에 불을 지르고 약탈과 살인을 서슴지 않았다. 구물천은 의적을 자처하며 경주관아를 점령하고 최부잣집에 쳐들어가 서고(書庫)로 쓰이던 사마소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하려 했다. 하지만 소작인과 하인이 막아서며 더 이상 약탈과 방화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때 최현식은 폭도들 앞에 나서 “죄가 있다면 사람에게 있지, 집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내게 죄가 있다면 나를 벌하고 집은 불태우지 마시오”라고 말해 그의 용기 있는 행동에 폭도들이 물러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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