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숲과 함께 자라야 한다.” 고(故)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는 생전에 ‘내실 있는 정도경영’을 강조했다. 이 창업주는 나무가 숲에서 자라지 못하면 뿌리를 내리기 어렵듯이 기업인이 정치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보다는 기업들의 숲 속에서 무한경쟁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이러한 이 창업주의 한눈 팔지 않는 ‘내실 경영’은 태광그룹을 재계 40위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밑바탕이 됐다.
태광그룹의 혼사에도 내실을 중요시하는 이 창업주의 신념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태광그룹은 정·관·재계를 아우르는 탄탄한 ‘알짜’ 혼맥 지도를 그리고 있다.
◇이임용 창업주… 결혼으로 창업 동지까지 얻어= 이임용 창업주는 결혼과 함께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1921년 경북 영일군에서 이우식씨와 정막랑씨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임용 창업주는 1942년 같은 동네 유지 이송산씨의 맏딸 이선애(86. 전 태광산업 상무)씨와 중매 결혼을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창업주는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6·25전쟁이 발발하며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4년 이 창업주는 태광그룹의 모체인 태광산업사를 설립하며 섬유산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부산의 소규모 직물공장에 불과했던 태광산업은 스판덱스, 나일론 등 다양한 소재의 섬유호황기를 거치며 대규모 섬유업체로 성장했다.
이어 이 창업주는 동양합섬, 고려상호신용금고, 흥국생명, 대한화섬, 천일사 등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그룹의 면모를 갖춰 나갔다.
이 창업주는 이선애 상무와의 결혼으로 태광그룹을 일으켜 세울 뿐만 아니라 ‘창업 동지’도 얻게 된다. 그 주인공은 이선애 상무의 동생 이기화(80) 전 태광그룹 회장이다. 이 창업주와 이기화 전 회장은 현재의 태광그룹을 함께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창업주는 또 다른 처남 이기택(77) 전 민주당 총재로 인해 난관에 부딪치기도 했다. 이기택 전 총재가 야당의 거물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태광은 군사정권 시절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는다. 이후 이 창업주는 “기업인은 경영에만 전념해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게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인 만큼 사업 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겠다”며 정경분리를 강조했다.
◇자녀 모두 중매결혼…화려한 혼맥= 태광그룹 2세들은 연애결혼한 커플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절의를 중요시한 ‘경주 이씨(慶州李氏)’의 가풍을 이어받은 이임용 창업주는 평소 유교적인 면을 강조하며 전통과 관습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 같은 영향에 따라 이 창업주는 3남3녀의 자녀 모두 중매결혼을 시켰다. 이 창업주는 명문가의 훌륭한 자제들을 집안 어른이나 친지들을 통해 중매를 넣어 혼사를 성사시켰다고 한다. 이에 따라 태광그룹의 2세들은 내로라하는 정·관·재계의 명문 집안과 백년가약을 맺어 화려한 혼맥을 구축했다.
장남인 고(故) 이식진 전 태광산업 부회장의 혼사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비교적 평범한 편이다. 이 전 부회장은 개인사업가 진재홍씨의 장녀 임순(62)씨와 결혼해 슬하에 정아, 성아, 원준 등 1남2녀를 두었다.
차남 고(故) 이영진씨는 모친 이선애 상무의 친구가 중매를 서 고(故) 장상준 전 동국제강 회장의 막내 딸인 옥빈(62)씨와 혼인했다.
삼남인 이호진(52) 전 태광그룹 회장을 통해 태광은 롯데가(家)와 연을 맺는다. 이 전 회장의 부인은 신선호(79) 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의 맏딸 유나(50)씨다. 신선호 회장은 신격호(92) 롯데 총괄 회장의 여섯 번째 동생이다. 이 전 회장 부부는 슬하에 현준, 현나 1남1녀를 두었다.
이호진 전 회장의 결혼으로 태광그룹은 멀게는 KCC까지 연결된다. 신격호 회장의 조카 최은정씨는 정몽익 KCC 대표이사 사장과 결혼했다.
태광그룹은 이 창업주의 세 딸을 통해 더욱 화려한 혼맥을 구축한다. 장녀 경훈(60)씨는 친척 할머니의 중매로 고(故) 허만정 LG그룹 공동창업주의 막내 아들 허승조(64) GS리테일 부회장과 혼인한다. 태광그룹은 경훈씨의 결혼을 통해 고(故)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도 연결된다. 경훈씨 부부는 지안·민경 자매를 두고 있다.
차녀 재훈(58)씨는 고(故)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원용(64)씨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이원용씨는 현재 경희대학교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재훈씨 부부는 서윤, 서정, 서인, 혁준 등 1남3녀를 슬하에 두고 있다.
태광그룹은 재훈씨의 결혼으로 정·관계 유력인사와 연결된다. 양택식 전 시장의 동생 양기식씨의 딸 경희(56)씨가 홍석조(61) BGF 리테일 회장의 부인이다. 홍석조 회장의 누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69) 리움미술관 관장이다. 즉 이임용 태광 창업주는 고(故)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이 사돈의 사돈인 셈이다.
이외에도 태광그룹은 양택식 전 시장 가문을 허브로 노신영 전 국무총리,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김한수 한일합섬 창업주 등과 한 다리 건너 사돈 관계를 맺게 된다. 막내 딸 봉훈씨는 한광호 한국베링거인겔하임 명예회장의 아들 한태원(57) 전 한국베링거인겔하임 회장과 혼인했다. 슬하에 동우, 상우, 정우 3남을 두었다.
◇화려한 혼맥…그래도 경영은 ‘아들’= 이임용 창업주는 정·관·재계의 거물들과 사돈이 됐지만 이들을 경영에 참여시키지는 않았다. 대신 아들만은 철저한 경영수업을 받게 했다.
이 창업주의 장남 고(故) 이식진씨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태광산업 영업과장을 거쳐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차남 고(故) 이영진씨는 연세대 상대를 나와 태광산업에 입사했다. 이후 계열사인 대우파일, 흥국생명, 고려상호신용금고 등에서 일했다.
삼남 이호진 전 회장은 최근까지 태광그룹의 회장직을 맡았다. 재계에서는 이호진 전 회장의 아들 현준씨가 태광그룹을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