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정부기관인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가 조세피난처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예보는 신속한 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절차적 정당성, 사후 보고 과정이 석연치 않아 실체적 진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7일 예금보험공사 등에 따르면 예보는 지난 1999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인 선아트 파이낸스 리미티드와 트랙빌라 홀딩스 리미티드를 각각 설립했다.
당시 예보는 부실금융기관으로 퇴출된 삼양종금의 역외펀드 자산(5400만달러)을 확인했고, 이를 환수키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 지난 5월까지 상각·부실에 따른 손실을 제외하고 2200만달러의 공적자금을 회수했다. 이 과정에서 내부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만큼 이를 폭로한 뉴스타파의 주장처럼 유령회사는 아니다는 주장이다.
예보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사리 가시지 않고 있다. 우선 기관이 아닌 부서 직원 명의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는 점에서 의혹이 일고 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유근우, 진대권, 김기돈, 조정호, 채후영, 허용씨 등 예보와 예보 산하 정리금융공사 출신 임직원 6명이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 이들은 지금은 모두 퇴직상태다. 기관 명의로 설립했어야 맞지만 직원 명의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의문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예보는 “예보 자회사 형태로 세울 경우 정부 승인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며“해외 자산의 멸실 또는 은닉을 막고 신속하고 효율적인 회수를 위해 직원 명의로 설립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또 있다. 예보가 금융감독당국 모르게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했다는 점이다. 뉴스타파는 예보가 페이퍼컴퍼니 운영과 관련된 매각 자산 목록과 자금 거래 내용을 감독기관인 금융위원회는 물론 국회에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예보 주장대로 순수 공적자금 회수가 목적이었다면 페이퍼컴퍼니 설립 사실을 금융감독당국에 보고 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절차적 정당성 내지는 내용면에서 보고를 누락해야 할 만큼 떳떳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적자금 회수과정에서 포기한 3200만달러의 행방이나 2200만달러의 회수과정 등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점도 예보를 둘러싼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도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예보의 페이퍼컴퍼니 설립·운영이 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조치였는지, 탈세와의 관련성 등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신고 누락 등이 있었는지 당사자와 은행, 예보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것”이라며 “만약 신고를 안 했으면 위법 여부 등에 대한 조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