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공황장애 동반… 운동·정신치료 받아야
시어머니와의 ‘고부 갈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주부 최모(41)씨는 최근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고 사람들과 있어도 멍하니 웃음기 없이 앉아 있기 일쑤라고 말했다.
최씨는 “가만히 있다가도 화났던 순간을 생각하면 참을 수 없을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가족들한테 소리 지르고 눈물이 흐르는 일이 자주 있다”고 토로했다.
화병은 울화병(鬱火病)의 준말로 분노와 같은 감정이 해소되지 못해 화의 양상으로 폭발하는 증상의 증후군을 말한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등과는 다르다.
국민의 4% 이상이 화병으로 의심된다고 보고될 정도로 비교적 흔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가슴 답답함, 열감, 치밀어 오름, 목이나 명치에 뭉쳐진 덩어리 느낌 등이 대표적 신체 증상이다. 심리 증상으로는 억울하고 분한 감정, 마음의 응어리나 한(恨) 등이 있다.
또 화병과 동반하는 정신질환으로는 우울 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이 있다.
전문의들은 화병이 특별한 외상이 없어 방치하기 쉽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큰 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자가진단을 통해 반드시 자신의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스트레스·영양불균형 등 화병 유발 = 최근 화병 환자의 대부분은 40~50대 중년여성이며 주된 원인은 남편과 시댁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희대 김종우 교수가 책임연구자로 16개 한방병원이 참여해 2008년부터 4년간에 걸쳐 151명의 화병의심환자 중에서 화병진단환자 93명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화병은 대부분 40~50대 중년여성에서 주로 발병했다.
화병을 일으키는 주요 스트레스 원인으로는 남편이 가장 컸고 시댁, 경제문제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화병환자가 자주 겪는 증상(복수응답)으로는 △가슴 답답함(85명) △두통(75명) △가슴 두근거림(73명) △잦은 한숨(72명) △건망(68명) △어깨 혹은 뒷목 통증(64명) △입 마름(58명) △눈 피로(54명) △어지러움(51명) 등이 있다.
한의약계에서는 스트레스, 영양의 불균형, 야외활동의 부재로 인해 자율신경의 조절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화병의 주된 원인으로 보았다.
한편 최근 한의약계에서 환자의 화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표준 임상진료 지침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의약의 특성상 표준화가 어려운 현실에서 한방 진료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화병 임상진료지침은 화병의심환자 150여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4년간의 역학조사와 기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화병진단과 감별진단, 의뢰, 치료선택, 평가, 관리 및 예방을 포함한 표준 진료절차를 담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화병 등 진료지침은 대한한방신경정신과학회 및 대한침구의학회 등 관련 학회의 검토와 승인을 거쳐 한방의료 현장에서 실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운동’을 통한 자율신경 조절 필요 = 화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화기를 내려주는 한방요법이나 운동을 통한 자율신경의 조절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전문의들은 입을 모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인터넷 서핑을 한다든지 술, 담배, 과로를 한다. 이같은 생활습관은 스트레스를 풀기보다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게 돼 자율신경의 조절능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자율신경실조란 몸 안에서 자율적으로 조절돼야 하는 신경이 그 조절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몸의 거의 모든 기능은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는다. 호흡을 하게 하는 폐의 기능, 소화, 흡수를 담당하는 위장 작용, 심장의 기능, 대장의 연동운동, 내분비계, 면역 기능 등 자율신경이 조절하는 기능은 다양하다.
이러한 자율신경의 실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심리적·물리적·화학적 스트레스, 유전적 요인, 과로, 불균형적인 식사습관, 운동 부족 등으로 인한 뇌의 비정상적인 자극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런 비정상적인 자극은 뇌의 좌뇌 또는 우뇌만을 자극해 뇌를 불균형 상태로 만든다. 균형이 깨진 뇌로 인해 불면, 불안, 초조, 열 상승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되고 직장에서는 감정조절능력 상실이나 잦은 실수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변기원 변한의원 원장은 “스트레스가 많고, 영양적으로 불균형이 심한 현대인들은 자율신경이 쉽게 실조될 수 있다. 이는 자칫 방치했을 경우 성인ADHD,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평소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특히 스마트폰 사용에 비해 야외활동 시간이 적은 생활습관은 좌뇌와 우뇌의 균형을 깨뜨려 자율신경실조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치료는 화병환자의 개별 특성을 고려해 약물이나 침구, 정신치료 등이 주로 처방된다. 증상이 호전된 이후에도 분노와 스트레스가 쌓여 재발하지 않도록 분노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지속적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평소 자기 감정 조절이 어려운 사람은 ‘해울타법’을 평소에 습관화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해울타법은 경락의 에너지장 순환을 통해 몸과 마음의 막힌 곳을 뚫어주는 자가 스트레스 치유 및 예방 기법이다. 마음속으로 본인이 화가 난 이유를 말하면서 손날에 있는 주름 부분을 교차시켜 연속적으로 두드려주는 방법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
아울러 생활습관의 개선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출ㆍ퇴근시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30분씩 꾸준하게 산책, 조깅, 자전거타기, 배드민턴 등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율신경을 안정시켜 예민한 성격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