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음악에 빠져있었기에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다.”
2002년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한 허규 자신도 뮤지컬 배우로 거듭날지 몰랐다. 당시 그는 밴드 생활을 하던 중 밴드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을 지인의 소개로 하게 됐다. 그는 “배우들이 직접 연주를 해야하는 뮤지컬이었다. 나는 기타를 직접 연주했다. 짧은 시간에 배우를 훈련시키는 것이 무리가 있으니까 그게 가능한 배우를 찾던 중 그게 내가 됐다”고 뮤지컬 데뷔과정을 설명했다.
운이 좋아 뮤지컬에 데뷔했다는 그가 새 작품에 참여한다. 현재 공연 중인 ‘미아 파밀리아(Mia Famiglia)’다. 오는 26일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소극장블루에서 무대에 오른다. 24일 오후 프레스콜(언론시연회)을 마친 그를 충무아트홀 내 카페에서 만났다.
이번 작품에서 밴드 앨범 일정으로 늦게 투입됐다고 들었다고 하자 그는 “2주 전부터다. 연습기간이 엄청나게 짧은 편이다. 처음하자고 했을 밴드 앨범이 예정돼 있어 못한다고 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연습 3주차 됐을 때 합류하기로 결정됐다. 영상을 찍어서 보고 이러면서 준비를 한 거다. 사람들 앞에서 보여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고 덧붙였다.
‘미아 파밀리아’ 곡은 높은 음역대의 곡이 많다. 그러나 의외로 그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저음의 음역대다. 그는 “보통 남자보다 음역대가 높다. 늦게 투입돼서 다른 배우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솔로 곡은 나한테 맞췄지만 앙상블 곡의 경우 다른 배우들에게 맞춰진 상태로 해야 됐다. 대부분의 곡이 나랑 음역대가 맞지 않아 힘들었다. 부르기가 힘들다기보다 표현하기가 힘들다. 노래연기를 하려면 음역대가 맞아야 감정표현이 가능한데 그게 어렵다”고 설명했다.
짧은 연습기간이었음에도 그가 이 작품을 하게된 이유가 있다. 김운기 연출이다. ‘마마 돈 크라이’ 초연을 같이 작업한 김운기 연출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해피한 것 좋아하고 즐거운 것 좋아하는 밝은 스타일이다. 그런데 김운기 연출의 작품이 욕심이 났다. 실제로는 마피아처럼 무섭고 어두운 캐릭터는 안 맞는다. 이런 역할 안 해봐서 긴장된다”고 작품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그의 스타일을 아는 팬들도 의아해했다. 그는 “(팬들이) 상상을 못 한다. 내가 했던 캐릭터들이 ‘광화문 연가’의 지용이처럼 까불까불 한다든가 ‘오디션’ 병태도 소심한 캐릭터다. 그들의 반응은 ‘종잡을 수 없다. 상상이 안 된다’였다”고 전했다.
본격적으로 뮤지컬로 뛰어든 계기는 뭘까. 그는 뮤지컬 데뷔 7년 후 ‘오디션’이란 뮤지컬을 했다. 그것도 역시 배우가 직접연주를 해야 하는 록밴드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이다. 허규는 “그때 뮤지컬의 매력을 느꼈다. 2002년도는 재밌게 한 번 하고 말 줄 알았었는데 2009년도에는 하면서 연기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대중들은 자기가 아는 연예인이나 가수가 아니면 마음을 닫고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뮤지컬 무대에서는 몰라도 스토리 안에서 나를 봐주니까 마음을 열고 봐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뮤지컬의 또 다른 매력은 팬이라고 한다. 그는 “팬도 뮤지컬에서 더 많아졌다. 음악이 내 인생의 메인이지만, 뮤지컬도 음악과 관련된 한 영역이다”고 말했다. 특히 그가 감탄한 것은 뮤지컬 팬의 적극성이다. 뮤지컬을 하면서 팬카페도 뮤지컬 성향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10명의 팬이라도 음악팬들은 멀리서만 보고 온라인 정도의 활동을 한다면 뮤지컬 팬들은 아주 적극적이다. 공연도 매일같이 보러오고 선물도 주곤 한다. 팬이 더 많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허규는 무대 위에서 한 작은 실수까지도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 “적을 만들지 말자가 철학이었다. 항상 좋게만 가려고 했다. 나이가 서서히 들면서 바뀌고 있다”며 “좋은 상황이던 나쁜 상황이던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상황을 받아 들이고 인정하고 즐기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