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50여개 대기업 조사중…재계 “목적방법 변질” 우려
“악질 세무관리, 엄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960년 5월 2일 과도정부의 두 번째 국무회의. 당시 윤호병 재무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기업들의 악질 세무관리 행태를 엄중히 처단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4·19 정신의 당연한 제일 과제였다.
어찌보면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1950년대 국내 기업인들의 자본축적 과정은 한 마디로 특혜의 연속이자 부패의 온상이었다. 특히 해방 후 1950년대 중반까지 일본인들이 보유했던 재산이 기업들에게 넘어갔을 뿐만 아니라 원조자금 물자의 선별 배정, 특혜적 저리 융자, 정부 및 미군 건설 공사의 독점 등 기업인들의 재산축적 방법은 상상을 초월했다.
1960년대 들어서는 1957년에 실시된 정부의 은행주 불하를 받은 기업들이 대재벌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의 입김으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 그중 일부를 다시 정부에 바치는 이른바 ‘정경유착’이 만연했다. 결국 부정부패, 탈세를 일삼는 기업들은 비난과 질시의 대상이 됐고, 정부의 조치는 불가피했다.
과도정부는 칼을 뽑는 대신 ‘탈세액 자진신고’로 해법 수위를 낮췄다. 정부가 ‘5년간 탈세를 80% 이상 정직하게 신고하면 벌과금도 면제해주겠다’는 전제를 내걸었지만 신고한 기업인은 9명에 불과했다.
저조한 자진신고 결과는 거센 비난 여론으로 이어졌다. 당시 정부는 본격적인 기업들의 탈세조사에 들어갔고 ‘벌과금과 추징금’이라는 칼을 뽑아들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처분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이 같은 결단은 부정축재자처리법이 탄생하고 세무조사가 틀을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세무조사가 시작된 지 50여년이 지난 현재의 모습은 어떨까.
재계는 세무조사의 목적과 방법이 다소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현재 국내 대기업 중 세무조사를 받는 곳은 50여개로 알려졌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세무조사가 증세 없는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 결과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을 쥐어짜면 당장의 재원은 마련할 수 있겠지만 이는 그만큼 미래의 세금을 갉아 먹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족한 세수는 경기 활성화가 기초가 되어야 하며 복지는 장기적인 계획으로 단계별로 진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