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대 그룹의 환차손에 따른 손실액만 8000억원…수출기업들은 환율에 직격탄
엔저가 장기화되고 원화가 강세 기조를 보이는 원고·엔저의 지속 현상이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엔저 드라이브가 재개되면서 원엔 환율은 5년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내년에는 100엔당 1000원 붕괴 가능성까지 조심스레 제기된다. 당장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기업들은 환율 직격탄을 맞게 됐다. 원화절상과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되는 일본형 불황까지 우려되는 이유다.
25일 원엔 재정환율은 15시 기준 서울외환시장에서 100엔당 1042.3원을 기록, 1040원선을 위협했다. 이는 2008년 9월 12일 1032.2원 이후 5년 2개월여 만에 최저치다. 원-달러 환율 역시 지난 6월 24일 1161.40원으로 고점을 찍은 후 줄곧 내려가 지난 22일 1060.20원으로 거래를 마쳤고 이날에는 장중 1060원선을 밑돌았다.
원달러에 이어 원엔 환율의 하락 여파로 일본 제품과 경합해야 하는 전자,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미 이같은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올해 들어 환율하락(원화 강세)로 인한 10대 그룹의 환율 관련 손실액이 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닷컴이 집계한 자산 상위 10대 그룹(공기업 및 금융회사 제외) 소속 83개 상장사가 감사보고서에 공개한 환차손익 현황을 보면 올해 1∼3분기 누적 순환차손(환차익-환차손) 금액은 7600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순환차익이 957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년만에 1조7170억원의 손실을 본 셈이다.
더욱 문제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수출기업들이 각각 1000억원 규모의 순환차손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재벌닷컴은 미국 정부의 양적 완화 축소 가능성에도 원화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 연말까지 환차손 규모는 1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수출민감도가 과거에 비해 약화됐다지만 환율하락이 계속될 경우 수출기업의 준비여력이 떨어져 수출 주도형 국내 경제에 대한 충격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되는 한 원화강세를 막기 위한 외환당국의 역할은 제한적일 것이지만, 환율 급변동을 막기 위한 미세조정 차원의 시장개입과 자본유입 억제 조치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장기적으로는 내수확대를 통해 성장세를 높이고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적절한 수준으로 줄여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우리 기업들은 매출이나 수익성이 크게 악화돼 있는 상황이라 환율대응 능력이 높지 않다”며 “기업의 해외투자 증가로 국내 투자와 고용, 생산이 위축되는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우려돼 일본과 같은 장기 저성장의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