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
이 문구는 여행대상국 정부를 향한 외교통상부 장관의 협조요청이다. 문구는 상당히 간곡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정부의 배려가 잘 담겨 있다. “집 나가면 고생”이란 말이 있듯이 바다 건너 해외로 나가는 국민들은 자신의 여권에 선명히 새겨진 이 문구를 통해 조금이나마 안심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해외 주재 대사관, 외교부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고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배우 전도연, 고수가 주연을 맡았으며 배우 출신 여감독으로 유명한 방은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004년 10월 30일 프랑스 오를리국제공항에서 한국인 주부 마약 운반범으로 검거된 일명 ‘장미정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는 평범한 주부였던 송정연(전도연)이 마약범으로 몰린 후 카리브해의 외딴 섬 마르티니크 교도소에 수감된 상황을 통해 대사관, 외교부의 고질적인 문제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화가 주목한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대사와 비서관의 문제점은 무관심과 이기주의 그리고 직무유기다.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대사관의 직원들이 “마약을 운반한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를 방치한다. 대사관의 청원서 하나면 정연은 감옥이 아닌 대사관에서 보호받을 수 있었지만 대사관은 얽히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방치한다. 마약밀수의 주범인이 잡혔고, 국내에서 재판도 진행됐지만 프랑스 법원이 그렇게 기다리던 번역 서류는 대사관의 부주의로 전달되지 않았고, 정연은 재판도 받지 못한 채 2년여의 시간을 가족과 떨어진 채 감옥에서 보낸다.
발칙한 위선도 있다. 대사관은 향후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명분을 위해 정연이 보호 감찰되어 있는 마르티니크섬에 방문해 형식적인 위로를 하고 떠난다. 이들은 떠나기 전 “남들은 일부러 돈 내고 휴양하러 가는 곳이다”며 스스로의 귀찮음을 위로한다.
외교부의 권한은 법률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돼 있다. 외교 정책, 외국과의 통상 교섭, 조약, 기타 국제 협정, ‘재외 국민의 보호’, 국제 사정 조사 및 이민에 관한 사무를 총괄하여 관장하는 것. 영화 말미 정연을 만난 남편 종배에게 전화 한 통을 통해 뒤늦게 사실을 통보하는 외교부의 직무이행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에서 지적하는 외교부의 모습이 단순히 극화됐을 거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장미정씨. 평범한 주부이던 그는 2004년 가을 남편 친구에게서 프랑스로 ‘짐’을 가져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원석인 줄 알고 받은 짐은 다량의 코카인이었고, 파리 오를리 공항에 내린 그녀를 기다린 것은 2년여의 수감생활이었다.
장씨는 파리 인근 구치소에서 3개월, 프랑스 본토에서 7100km, 한국에서 1만2400km 떨어진 대서양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의 뒤코스 구치소에서 1년여를 보냈다. 이후에는 보호관찰 형태로 마르티니크 섬에서 9개월을 살았다. 2년여 동안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온갖 고생을 겪은 장씨의 4살 딸은 어느새 6살이 됐다. 머나먼 땅에서 언제 가족을 만날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인권을 빼앗긴 이 주부의 삶은 우리 사회의 숨겨진 단면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도 절대적이다. ‘집으로 가는 길’ 제작의 변에는 ‘대한민국이 외면한 현실’이라는 문구가 굵게 새겨져 있다. 이는 외교부와 대사관의 병폐를 지적하기 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에 대한 전국민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영화 말미 최후진술을 요구하는 프랑스 판사에게 “전 그냥 집에 가고 싶습니다. 남편과 딸에게 가족을 돌려주세요”라고 말하는 정연의 얼굴에서 글로벌 시대인 지금 전세계에 퍼져 있는 자국민을 대하는 외교통상부의 불성실함에 대한 분노와 우리의 무관심이 심금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