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전 청와대 정책실장
부채의 원인을 놓고 말이 많다. 방만한 경영과 높은 임금 등의 내부적 요인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정책 실패와 낙하산 인사 등의 외부적 요인을 이야기한다.
둘 다 맞다. 어느 한쪽만 잘못돼 이렇게까지 되었겠는가. 그러나 주된 원인은 역시 외부 요인이다. 정치와 정책이 문제다. 잘 살펴보라. 공기업 부채는 묘하게도 민주화와 국민의 권리 신장 그리고 정부의 통치역량(governability) 저하와 궤를 같이한다. 정치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이것저것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막상 그에 필요한 돈은 없고, 그래서 결국 힘없는 공기업에 그 부담을 떠넘기곤 하는 것이다.
똑같이 당하고 있는 게 지방정부들이다. 각종 복지사업과 지역 현안 등 정치권과 정부는 민심과 표를 얻기 위한 약속을 남발한다. 하지만 세금을 올릴 수도 돈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 이 역시 그 부담의 상당부분을 지방정부로 전가한다.
지방정부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나름의 정치적 기반을 가진 선출직 수장들이 들고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유아 보육비 분담금 등을 두고 시ㆍ도지사 등이 거칠게 항의했던 것은 그 좋은 예다. 그러나 공기업은 그럴 수도 없다. 인사에서 사업 결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있어 정부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에 문제 된 철도부채만 해도 그렇다. 그 출발은 KTX 건설 부채였다. 애초의 건설예산은 5조 원 정도. 그 자체가 정치적이었다. 비용을 낮게 잡아 사업 자체를 일단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과 함께 노선 연장과 역사 지하화 등의 정치적 요구가 반영되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비용이 추가됐다. 그러면서 그 비용이 무려 18조원으로 늘어났다. 철도공사는 이 중 4조5000억원을 떠안고 출발해야 했다.
나머지 비용은 철도시설공단이 안았다. 그러나 철도공사 역시 그 비용 상환을 위해 영업수익의 31%, 매년 5000억원 안팎의 선로사용료를 철도시설공단에 지불해야 했다. 지난 5년 동안 지불한 선로사용료가 2조5000억원이나 된다.
여기에 오지지역 운영 등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일도 해야 했다. PSO라 하여 정부보상이 있기는 하나 실비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부실 민자사업인 인천공항철도를 인수하며 1조2000억원의 빚을 졌다. 인심 쓰고 약속하는 것 등은 정부가 하고 재정부담은 철도공사가 안는 꼴이었다.
바람난 아비가 다 큰 자식을 잡는 방법이 뭘까. 이것저것 잘해 주며 환심을 사는 수밖에 없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처음에는 제법 큰소리치다 슬슬 바람기가 고질병처럼 일면서 결국에는 뒤로 물러서고 만다. 너도 먹고 나도 먹고, 임금이나 근로조건에 후해질 수밖에 없다.
이걸 고치겠다고 기획재정부가 나섰다. 감사원도 나섰다.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산매각 등의 자구책을 권고하고 지나치게 높은 임금이나 과도한 복리후생 문제 등을 따질 수 있다. 그러나 공기업 부채의 근본 원인인 후진적 정치문화와 낮은 통치역량, 즉 고질병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기대난망이다. 기능적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한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먼저 약속해야 한다. 정치개혁이나 국정운영체계 개편에 대한 큰 구상과 함께 공기업에 재정적 부담을 주는 정치적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부담을 주는 경우 반드시 재정보전을 해 주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리고 법과 제도로 보장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치와 정부가 변하지 않은 한 공기업 개혁은 공염불이다. 아까운 자산 팔고 무리하게 임금 통제해 봐야 고질병은 도지게 되어 있고 부채는 증가하게 되어 있다. 개혁안의 설득력과 집행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기업을 비판하고 압박하기에 앞서, 또 노조를 압박하기에 앞서 정치권과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