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조명이 꺼졌다. 주황색 형광봉이 반짝반짝, 별처럼 반짝였다. 넓은 체조경기장을 가로지르는 레이저 불빛이 스크린에 로마숫자 ‘ⅩⅣ’(16)을 새겼다. 공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 속에서 다섯 명의 신화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화는 22일과 2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데뷔 16주년 기념 콘서트 ‘히어(HERE)’를 열고 2만7000명의 팬을 만났다. 이번 공연에는 멤버 앤디가 불참해 다섯 명의 무대로 꾸며졌다. ‘괜찮을까’하는 우려도 잠시, 16년의 내공은 공연에 그대로 묻어났다.
◇신화가 가는 길은 언제나 ‘브랜드 뉴’
이날 공연을 위해 신화는 10집 앨범 수록곡 ‘무브 위드 미’와 11집 앨범 수록곡 ‘마네킹’의 특별 무대를 준비했다. 30대 남성의 섹시함을 극대화시킨 무대를 준비한 멤버들은 눈빛 하나, 손동작 하나만으로도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11집 앨범 타이틀곡 ‘디스 러브’의 ‘보깅 댄스’가 보여준 섹시함은 이날 무대를 위한 전초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1999년 발표한 2집 앨범 수록곡 ‘소망’ 무대는 팬들에게 또 다른 감동이었다. 앳된 목소리로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던 멤버들은 세월의 흐름만큼 성숙해진 모습으로 팬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았다. 정규 앨범이 아닌 스페셜 앨범 수록곡 ‘예쁘잖아’의 라이브 역시 팬들을 위한 소중한 선물이 됐다.
정규 앨범만 11장, 독보적인 레퍼토리를 보유한 신화는 매 공연마다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며 오랫동안 기다린 팬들을 위한 갈증을 풀어줬다. 그것은 신화와 팬들이 함께 나눈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이면서 앞으로 신화가 보여줄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실력도 웃음도 감동도, 말그대로 ‘퍼펙트맨’
‘스카페이스’로 공연 시작을 알린 신화는 ‘비너스’, ‘브랜드 뉴’, ‘슈팅스타’, ‘레드카펫’, ‘헤이, 컴온’까지 거침없이 달리며 객석을 깨웠다. 완벽한 군무와 흐트러짐 없는 라이브, 무르익은 무대 매너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무대가 이어졌다. 전진은 “이 자리에 없는 멤버를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하겠다”라고 굳은 각오를 전했다.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던 신화는 준비된 영상 속에서 180도 달라졌다. ‘지옥에서 온 신화중대’란 타이틀 아래 꾸며진 영상 속 신화는 백발의 노인으로 변신했다. 천연덕스러운 코믹 연기와 자로잰 듯 딱딱 떨어지는 합은 멤버들의 찰떡호흡을 엿볼 수 있게 만들었다. 특히 신화 제일의 재간둥이 전진은 가장 우스꽝스러운 대머리 분장과 ‘순간 분노’ 연기로 팬들에게 쉴 틈 없는 웃음을 선사했다.
거침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뒤로한 신화는 ‘미드나이트 걸’, ‘허츠’, ‘웃다가’ 등 주옥같은 발라드 무대로 체조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가창력을 보여줬다. 메인보컬 신혜성의 혼신을 힘을 다한 열창에 객석은 조용한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신화와 신화창조, 서로에게 영원한 ‘퍼스트 러브’
앙코르 무대를 앞두고 팬들은 일제히 ‘히어 위 아!(HERE WE ARE!)’라고 쓰인 주황색 슬로건을 펴들었다. 16년의 세월을 걸어 여기까지 온 신화를 위한 신화창조의 대답이었다. 공연 내내 팬들은 신화와 호흡을 주고받았다. ‘스테이’를 부를 때는 흥겹게 율동을 따라 했고, 이어진 댄서들의 댄스 배틀에서는 멤버들에게 보내는 것 못지않은 호응을 쏟아 냈다.
신화 역시 팬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모든 무대를 마치고 멤버 앤디가 등장하자 귀가 먹먹할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앤디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었다. 팬 여러분 멤버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란 말로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된 점을 사과했다. 반가움과 아쉬움이 뒤섞여 객석은 순식간에 눈물바다를 이뤘다. 신화는 “저희 여섯명은 절대 흩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10월에 앤디와 여섯 명으로 인사드리겠다”라고 팬들의 걱정과 우려를 잠재웠다.
“지금 모습을 여러분들이 죽을 때까지 기억하길 바란다”란 이민우의 한 마디에 이번 공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넘실대는 주황 물결을 가두려는 듯 멤버들은 끊임없이 객석을 향해 손을 뻗었고, 팬들은 지칠 줄 모르는 응원으로 보답했다. 이날 신화는 그들을 상징하는 대표곡 ‘T.O.P’를 부르지 않고 남겨뒀다. 그것은 앤디가 돌아올 자리를 마련해 두는 형들의 든든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사진제공=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