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런데 이런 참사들을 가만히 보면, 거의 모든 정권이 한 번 이상씩은 참사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해훼리호 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 그리고 성수대교 붕괴는 모두 김영삼 정권 때 발생했다. 씨랜드 참사는 김대중 정권 때 발생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노무현 정권 때의 일이다.
이 모든 참사는 인재(人災)적 측면이 강했다. 그리고 사후 수습에 있어서 미숙함도 반복해 나타났다. 이런 미숙함과 인재가 계속 이어지면서도 우리의 재난 구호 시스템이나 재난 방지 시스템은 나아진 것이 거의 없다. 만일 우리의 시스템이 조금씩 나아지기만 했더라도 대형 참사가 아예 발생하지 않았거나,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규모가 크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떤 정권도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이번 참사가 수습되면 이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려 할 것 같다. 여기서 분명히 지적하고 싶은 점은 야당도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발생한 참사를 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참사가 발생했을 당시, 참사 발생의 원인을 분석하고 시스템을 잘 마련했더라면 참사 발생을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참사 이후의 수습 문제도 지금처럼 엉망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거나, 아니면 곧 있을 6·4 지방선거에서 구호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사돈 남 말하는 꼴이 될 것이다. 만일 이 문제가 정치 쟁점화된다면 그야말로 정치권은 자폭 모드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지금 국민적 분노는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모든 공적 영역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국민적 분노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여야 모두 자숙하고 조용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시스템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지 무조건 새로운 매뉴얼을 만든다 뭐다 하면서 수선을 떨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서 나는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번 참사도 그렇지만, 매뉴얼이 미비해서 피해자 구조에 있어 문제가 발생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매뉴얼이 아니라 매뉴얼을 숙지하고 비상시 그 매뉴얼을 무리 없이 행동에 옮길 사람이 지금 행정부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순환 보직 차원에서 재난 구조 업무를 맡는 일이 계속된다면, 매뉴얼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을 것임은 분명하다. 한마디로 재난 업무 전문가를 키우거나 기존의 재난 전문가를 행정부에 초빙해야 한다는 말이다. 전문성과 경험이 없는 초짜들이 계속 재난 업무를 관장한다면, 참사를 예방하기에 역부족일 뿐 아니라, 수습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엉망일 것이다.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수학여행이나 MT(멤버십트레이닝), OT(오리엔테이션)와 같은 집단주의 문화의 산물을 언제까지 지속시켜야 하는지, 이제는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부터 따져보면 1970년 10월 있었던 모산 수학여행 참사를 비롯해 2000년 부일외고 수학여행 참사, 올해 경주 리조트 붕괴 참사 그리고 이번 참사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수학여행이나 OT 관련된 참사가 반복됐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집단주의 문화의 소산인 수학여행이나 MT, OT 등이 유지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런 참사가 발생하면 단지 그해에만 반짝 수학여행이나 MT, OT 등을 금지했다가 다음 해가 되면 또 풀어주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좀 확실하게 수학여행이나 MT, OT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고 나면 금지했다 또 풀어주는 악순환을 언제까지나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훈을 모르는 사회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을 모두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