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중앙은행 임직원들의 소신 키우기에 나섰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대외 파고에 휩쓸리지 않고 철저히 국민의 입장에서 소신에 따라 우직하게 일하는 인재상을 바람직한 것으로 꼽아왔다. 하지만 전임 김중수 총재 시절에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개별 임직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극히 제한했다. 이에 따라 이 총재는 이런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판단, ‘중앙은행맨’에 걸맞은 자신감과 의견을 피력할 수 있도록 팔을 걷어붙였다는 분석이다.
이 총재는 최근 임직원들에게 “맹목적 충성과 과도한 아부는 천박함을 보이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총재바라기’식으로는 조직에서 인정받기 힘들다는 인사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라는 의견도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소신 있는 중앙은행 직원이 돼야 한다는 것을 총재가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또 토의문화 확산에도 나섰다. 매달 총재 부총재, 부총재보, 감사, 경제연구원장, 외자운용원장, 국·실장이 모여 한 ‘집행간부감사부서장회의’의 스타일을 전면 개편한 것이다. 우선 길어서 발음하기도 힘든 회의 명칭을 ‘간부회의’로 간결화 했다. 또 기존에는 미리 공지된 주제에 대해 한정된 범위 내에서 의견이 조율되는 수준에 그쳤다면 앞으로는 토의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아울러 임원급(총재·부총재·부총재보) 참석이 의무화된 것을 유연하게 적용해 실무진들이 더욱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 총재는 심지어 조직 분열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존폐 논란의 대상이 된 행내 익명게시판 ‘발전전략참여방’의 익명성을 오히려 강화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같은 사람이 글을 올리면 해당 글에 번호를 매겨 익명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보완했으나 이제는 이조차도 없애기로 한 것이다. 익명으로 제기되는 직원들의 생각까지도 열린 마음으로 조직이 수용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총재는 야근도 소신 것 하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 총재는 “한은에서 야근은 필연적이지만 상사의 눈치를 보며 일없이 늦게까지 앉아 있는 사람을 나는 존중하지 않는다”며 “유능한 직원은 자기의 일을 마치면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고 오히려 신뢰 못 받은 직원이 상사가 떠날 때까지 남아 있는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가 보여준 최근 이 같은 일련의 조치들은 김 전 총재와 대비를 이룬다. 김 전 총재는 소통창구를 하나로 해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명목으로 총재 외 다른 임직원들이 대외 발언을 하는 것을 통제했다. 심지어 해당 발언을 한 이를 추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