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입력 2014-07-0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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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일이란 게 그렇다. 세상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가 없다. 많은 경우 어느 한쪽이 좋아하면 다른 한쪽은 싫어한다. 그래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늘 욕이 따른다. 일을 분명히 할수록, 주장이 선명하고 강할수록 그렇다. 일종의 업보인 셈이다.

사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잘 관리해 나간다. 자세를 낮춰 마음이 상한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기도 하고, 얻은 것을 세상에 고루 나눠 주기도 한다. 정적을 자신의 내각에 끌어들인 정치 지도자들의 이야기나 나누고 베풀면서 ‘300년 부’의 역사를 쓴 경주 최부잣집의 미담 등이 그런 경우들이다.

오랫동안 이 평범한 진리를 체감하지 못했다. 그저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정부 일을 할 때는 더욱 그랬다. 민심을 살피고 하는 일이 다 머뭇거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부동산 정책에 정부 혁신, 그리고 산업구조 개혁 등 칼질에 칼질을 거듭했다.

그러다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표절의혹이 제기됐다. 젊은 시절, 선배 교수가 지도하던 나이 든 한 학생이 내 박사학위 논문과 학회에 발표한 또 다른 논문을 모방한 것을 두고 오히려 내가 그 학생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억울했다. 당시 나이 33세, 미국 대학에서 최우수 박사학위 논문상을 받은 신진 학자였다. 그리고 바로 그 박사학위 논문을 모방한 학생은 50대 중반의 대학 행정직 직원이었다. 누가 봐도 빤한 일이었다. 이쪽저쪽 논문을 펼쳐만 봐도, 또 발표의 날짜만 확인해도 바로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진실과 관계가 없었다. 의혹을 부인하자 바로 연구비 문제 등 온갖 이해할 수 없는 의혹들이 더해졌다. 사기와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 되었다.

할 수 없이 청문회를 다시 열어 줄 것을 요청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표현에 따르면 청문회 결과는 ‘완승’. 하지만 진실과 관계없이 해임건의안은 들어오게 되어 있었고, 또 통과하게 되어 있었다. 청문회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한 뒤 바로 사표를 냈다.

얼마 뒤 스님 한 분을 만났다. 그 스님이 말했다. “전생에 죄가 많아 그래요.”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스님이 다시 말했다. “어제까지가 전생이오. 민심이 이렇게 사나운데 어찌 죄가 없겠어요. 이 일 저 일 옳다고 했겠지만 그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도 많아요. 그 업보를 어찌할 거요. 이번 일로 그분들 가슴이 조금은 풀어졌을 거요. 차라리 다행이요.”

아프고 분한 마음이 빠져나갈 통로를 찾고 있어서였을까. 그날 그 말씀이 가슴에 새겨졌다. 옳고 그름을 떠나 사랑과 이해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되었다.

국무총리 후보 지명자가 ‘매국노’로 난도질당하는 것을 보며 그때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기억에 남아있는 그 지명자의 글들을 떠올랐다. 분명한 논조들, 하지만 한쪽에 치우친 생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가슴을 도려내는 글들이었다. 그 칼날 같은 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을까? 나 자신 그 아픔이 다시 다가왔다.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진실의 문제는 뒤로 갈 수밖에 없다. 교회 강연의 풀 버전을 보았느냐 따위의 항변은 소용이 없다. 보기 싫은 사람의 강연을 애써 찾아가며 들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한다. 맞다.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어차피 세상은 논리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또 그렇게 돌아가야 할 이유도 없다. 감성과 감정도 세상살이의 중요한 부분이다. 나름 존중되어야 할 이유도 있다.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인가? 아니다. 나설 일이면 그 일로 마음을 다칠 사람이 얼마며, 그 업보가 얼마나 클 것인지를 생각하고 나서라는 말이다. 당당하게 확신을 갖고 나서되 사랑과 이해의 마음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도 된다.

또 있다. 후일 그 일로 인해 공격받을 때 이를 가슴 아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런 것’, 당당하게 했던 만큼 당당하게 받으라는 말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새삼 노무현 대통령의 유언 한 구절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오랜만의 감상적인 글, 써 놓고 보니 송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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