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지난 23일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 파리바게뜨 매장을 열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1988년 프랑스풍의 정통 베이커리를 표방하며 국내에 첫 매장을 선보인 지 26년 만의 감회를 제쳐두고 향후 사업방향의 핵심인 글로벌 확장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중국과 미국, 싱가포르에 이어 바게뜨의 본고장 프랑스까지 진출했지만 한국에서의 행보는 사실상 가시밭길이다. 각종 규제 때문에 파리바게뜨는 물론 SPC그룹의 다른 외식업체도 확장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파리바게뜨 올림픽점은 대기업 빵집을 놓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속살까지 그대로 드러냈다. 지난 달 말 동반성장위원회는 파리바게뜨의 올림픽공원점에 대해 500m내에 개인제과점인 ‘루이벨꾸’가 있다는 이유로 제과업종 중소기업 적합업종 합의에 위반된다는 시정명령서를 SPC에 보냈다. 법적인 강제성은 없는 내용이었지만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SPC는 “올림픽공원점은 운영주체만 바뀌었을 뿐,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기본 취지를 위반하지 않았다”며 “특히 루이벨꾸는 동네빵집으로 보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SPC는 동반위가 2차 시정명령서를 보내자마자 백기를 들었다. SPC는 지난 22일 곧바로 동반위에 의견서를 보내 "파리바게뜨가 아닌 자사 다른 브랜드로 입점을 하겠다"면서 "단, 제과·제빵업으로는 입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최근 대기업 제빵회사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할인율 담합 조사에 대한 압박과 향후 새로 취임할 동반위원장과의 관계 설정을 염두에 두고 한발 물러선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빵집 하나 때문에 향후 사업까지 그르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동네빵집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최근 대한제과협회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파리바게뜨가 동반위 권고사항을 어기면서 김포 등지에서 빵집을 출점하고 새 빵집 브랜드를 론칭하고 있다 주장했다. 김서중 회장은 SPC를 동반위의 권고사항을 지키지 않는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아세우며 눈물까지 흘렸다.
허 회장으로서는 공정거래위원회, 동반성장위원회, 동네빵집 등 세 곳에서 한꺼번에 조여오는 압박에 일단 한 박자 쉬어가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빵의 본고장 파리까지 도달한 뚝심으로 국내에서의 규제와 반발 등 잇따른 우환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