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최윤희ㆍ배구 박미희 ‘1세대 미녀스타’…2000년 이후 기업 마케팅 경쟁 ‘미녀 신드롬’
“땡! 땡! 땡! 땡!”
마지막 한 바퀴(111.12m)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국적이 다른 두 여인의 빙판 위 승부가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결승선을 반 바퀴 남기고 뒤져 있던 열일곱 살 소녀는 폭풍 같은 질주로 중국 선수를 추월했다. 소녀는 포효했고,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전에서 극적인 역전극을 연출한 심석희(17·세화여고)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에이스 심석희를 비롯해 박승희(22·화성시청), 조해리(28·고양시청), 김아랑(19·전주제일고)이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는 레이스를 펼치며 메달 갈증에 허덕이던 한국 선수단에 단비 같은 금메달을 안겼다.
심석희는 경기 직후 슈퍼스타가 됐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는 심석희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이 있었다. 결승전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은 공상정(18·유봉여고)이다. 화교라는 독특한 이력과 귀여운 외모 때문이다. 특히 돋보이는 외모는 네티즌의 궁금증을 자극했고, 삽시간에 공상정 신드롬이 일어났다. 외모지상주의 속 스포츠를 바라보는 두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스포츠 평론가 신명철씨는 “미녀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다고 현대인이 과거에 비해 미인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의 발달과 SNS의 활성화가 이 같은 현장을 부추겼을 뿐이다. 미녀 신드롬에 대해 반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과거는 달랐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했다. 따라서 미녀와 스포츠 스타는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었다. 그런 편견을 가볍게 뛰어넘은 선수는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47)였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수영 3관왕(배영 100m·200m·개인혼영 200m)에 오른 최윤희는 15살 어린 나이였지만 웬만한 연예인이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스러울 만도 했지만 4년 뒤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배영 100m·200m)에 오르며 한국 스포츠에 미녀 신드롬을 일으켰다.
수영장에 최윤희가 있었다면 배구 코트에는 원조 ‘배구 얼짱’ 박미희(51)가 ‘남심’을 사로잡았다. 1983년 미도파에 입단한 박미희는 1984년 LA올림픽을 비롯해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등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한국 여자배구의 간판 공격수로 활동했다. 지금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감독이다.
가수 윤종신과 결혼한 왕년 테니스 스타 전미라(36)는 한때 한국 테니스의 기대주였다. 1994년 윔블던 오픈 주니어 단식에서 준우승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전미라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해 미녀 스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더 이상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000년 이후 한국 스포츠는 본격적인 미녀 스포츠 스타 신드롬이 일어났다. 특히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는 김미현(37), 박지은(35), 강수연(38) 등 미녀골퍼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국내 골프 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얼짱’으로 주목받은 첫 번째 주인공은 안시현(30·골든블루)이다. 2002년 프로 무대에 뛰어든 안시현은 2003년 제주에서 열린 LPGA 대회 CJ나인브릿지 클래식에서 우승, LPGA투어 직행 행운을 안았다. 홍진주(31)는 2006년 코오롱·하나은행 챔피언십 정상에 올라 LPGA투어 시드를 획득, SK텔레콤·혼마골프 등 기업의 전폭적 후원을 받으며 미국으로 떠났다.
역사 속 미녀 스포츠 스타는 행복했다. 더 많은 관심과 후원 속에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있어 행복했던 팬들도 많았다. 그러나 스포츠계 미녀 신드롬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같지 않다.
박성희 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부 교수는 “미녀스타나 미녀스타를 활용한 마케팅은 해당 종목의 흥행과 붐 조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스포츠는 결코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없다. 경기적인 수준과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단순히 눈길을 끄는 데만 집착한다면 장기적인 흥행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해당 단체나 기업들은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