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 록의 향연은 뜨거웠다. 내리쬐는 뙤약볕도,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도, 심술 머금은 비구름이 폭우를 쏟아내도 그들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상암벌은 용광로였다.
강한 중독성 때문일까. 뮤직 페스티벌은 올해도 록 마니아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다. 성별ㆍ나이ㆍ직업은 서로 다르지만 록 앞에선 모두가 하나였다. 10일 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화려하게 수놓은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2014(이하 시티브레이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시티브레이크의 성공 개최 뒤에는 한국 축구의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한다. 지난 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올 시즌 K리그 19라운드 FC 서울과 울산 현대의 경기는 관중석의 4분의 1가량이 폐쇄된 가운데 진행됐다. 시티브레이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쪽 좌석을 통째로 폐쇄했기 때문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2002년 한ㆍ일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개막식(전)과 한국과 독일의 4강 경기가 열린 월드컵의 성지다. FC 서울은 지난 2004년부터 서울시설관리공단(이하 공단)으로부터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임대해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2002년 한ㆍ일 월드컵이 열린 10개 월드컵 경기장 중 가장 성공적인 운영으로 손꼽히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대부분의 월드컵경기장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반면 축구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공연 유치를 통해 흑자 운영 사례를 남겼다.
시티브레이크도 그 문화 행사 중 하나다. 비록 1년에 한 번이지만 이틀 동안 7만5000여 명(지난해 기준)이 다녀갈 만큼 반응이 뜨겁다. 공단 입장에서는 축구팬 못지않게 중요한 손님이다.
그러나 준비 과정이 서툴렀다. 공단은 축구경기에 지장이 없도록 6일 경기가 끝나는 대로 무대 설치를 준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침사로 인해 구조물 점검이 엄격해지면서 시티브레이크 주최 측인 현대카드에 일찌감치 무대 공사를 허락했다.
결국 이번 사건은 공사 일정을 일방적으로 조정한 공단과 K리그의 주권을 포기한 FC 서울, 그리고 축구팬을 배려하지 않은 현대카드가 빚어낸 참극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해 누구도 책임질 사람(기관)이 없다는 점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축구팬의 몫이었다
구차한 말이지만 서포터스 없는 축구는 있을 수 없다. 1983년 프로축구 슈퍼리그 출범부터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그리고 2002년 한ㆍ일 월드컵 4강 신화까지 서포터스는 늘 열두 번째 선수였다. 지금은 K리그 흥행의 주역으로서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가장 큰 후원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6일 경기장을 찾은 일부 축구팬들은 “축구장에선 축구가 우선”, “중계도 X 자리도 X”, “대한민국 축구의 현실” 등이 적힌 대형 피켓을 들고 이번 사건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들의 피켓 시위는 단순히 열두 번째 선수로서 대우받지 못한 것에 대한 투정이 아니다. 축구에 대한 관심과 배려 없이 월드컵 선전만을 강요하는 씁쓸한 현실에 대한 질타다.
시티브레이크 흥행 속에서 졸(卒)이 되어버린 K리그 서포터스를 통해 한국 축구가 극복해야할 산적한 과제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