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선택제·셧다운제 이어 국회 ‘중독법’ 추진…지원책 쏟는 美·中·유럽과 대조적
글로벌 경기 불황 속에서 게임 산업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가며 차세대 콘텐츠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컨설팅 기업인 PWC(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세계 게임시장 규모가 2017년까지 870억 달러(약 89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 등 세계 각국은 차세대 미래 콘텐츠 산업인 게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는 중이다.
하지만 국내 게임업체들은 오히려 위기에 놓여 있다. 한때 승승장구했지만, 정부의 각종 규제에 발목 잡히고 외산 게임에 치이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중국 시장 진출로 탈출을 모색하기도 했으나 중국 자본에 점차 잠식되고, 국내에 남아있던 업체들도 미국 게임의 공격을 받고 있다.
◇정부에 발목 잡히고, 외산 게임에 치이고 = 글로벌 시장의 움직임과 달리 창조경제의 대표주자인 게임산업은 졸속 규제에 발목이 잡혀 신음한다. 전 세계 200개 가까운 나라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게임 강국 대한민국 게임산업이 무너지고 있다.
K팝을 필두로 한 한류 음악 수출액보다 11배나 많은 연간 26억원가량의 달러를 벌어들이는 게임산업이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국회와 정부의 게임산업 규제가 도를 넘었다. 규제를 넘어 ‘탄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정치권과 정부가 게임산업을 마약류, 도박, 알코올과 같은 중독 물질로 규제하려는 ‘게임 중독법’ 제정 움직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게임산업에 대한 발목잡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정부는 학부모가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게임시간 선택제’와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셧다운제’를 운영 중이다. 여기에 게임업체 매출의 1%를 게임중독 치유기금으로 의무적으로 징수하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고, 게임을 4대 악으로 규정하는 국가중독관리위원회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메이저 게임 개발사들이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는 방안을 면밀히 검토 중이고, 대작 개발과 퍼블리싱을 아예 해외시장부터 시작하는 게임 산업계의 ‘탈 코리아’ 현상이 벌어진다.
국내 콘텐츠 수출의 57%를 차지하는 게임산업은 박근혜 정부 이후 창조경제를 이끌 ‘5대 글로벌 킬러 콘텐츠’ 중 하나로 꼽혔지만, 국회에선 게임산업을 규제하는 법안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엇박자인 모양새다.
국내 게임업체 한 임원은 “텐센트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은 국내와는 반대로 수백개씩 게임을 출시하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2~3년 내에 온라인 게임은 물론 모바일 게임 시장 역시 중국 업체들에게 모두 내주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현재 발의된 ‘인터넷 게임 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과 ‘인터넷 게임 중독 치유 지원에 관한 법률’엔 △셧다운제 확대 △게임 중독 치유 기금으로 매출의 1% 징수의 내용이 담겼다. 대표적 사행성 산업인 도박업체나 경마가 부담하는 비율(0.35%)의 세 배가 넘는다.
◇국내 게임시장, 추락하는 시장과 성장률 =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2년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9조7525억원으로 2011년에 비해 10.8% 늘었다. 2005년 8조원대에 이르렀던 국내 게임 시장은 2006년과 2007년 대폭락 이후 5조원으로 줄었다가 2008년부터 회복세를 보였다. 이후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보이며 시장 규모를 키웠으나 2012년부터 다시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게임산업은 10조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각종 규제로 위기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게임산업 수출 증가율은 2009년 13.4%, 2010년 29.4%, 2011년 48.1%로 급증하다 게임 셧다운제가 시행된 2011년 이후인 2012년에는 11%로 급락했다. 게임산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반영된 탓이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밤 12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 온라인 게임 제공을 금지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을 게임업계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게임산업이 계속해서 정부 규제에 발목이 잡힐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시장에 반영되면서 게임업체들의 주가는 하락세를 이어갔다.
한국 게임산업은 지난해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절을 버텨냈다. ‘4대 중독법’을 비롯해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았고, 인기 게임 플랫폼이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급변하면서 이에 적응하지 못한 업체들이 큰 폭의 수익 하락을 겪었다.
또 이 같은 규제와 시장 침체는 연간 게임물 제작 건수의 하락으로 그대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전체 게임물 등급 분류 신청은 2013년에 비해 34.4% 하락했으며 특히 PC 온라인은 43.1% 급감을 나타냈다. 또 2014년 2분기 게임 업계는 전반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서 천대받는다면, 결국 본사 이전과 같은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도 자신들의 국가로 이전하면 모든 혜택을 주겠다며 손을 내미는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